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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 (자료사진)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 (자료사진)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이번 주 뉴스 따라잡기 시간에는 주요 대선 후보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까지는 공화당의 주요 대선 후보들을 만나봤는데요. 이제 민주당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오늘 만나볼 주인공은 청취자 여러분께도 이제 그렇게 낯설지 않은 이름일 것 같은데요.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김현숙 기자가 소개합니다.

[녹취] 힐러리 클린턴 인터뷰

대통령의 아내로서 조용한 내조에 머물지 않고, 어린이와 여성, 건강보험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던 영부인 힐러리 클린턴.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앞으로 20년 안에 미국에 여성대통령이 탄생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는데요. 마치 자신의 이런 희망을 스스로 실천에 옮기듯 힐러리 클린턴은 2016년 미국 대선에 출마해 첫 여성 대통령을 꿈꾸고 있습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힐러리 다이앤 로댐 클린턴”

힐러리 다이앤 로댐 클린턴은 1947년 미 중서부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휴 로댐은 작은 사업체를 운영했고요. 어머니 도로시 로댐은 가정 주부인 평범한 가정이었습니다. 두 남동생과 함께 성장한 힐러리 클린턴은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1965년 유명 사립 여자대학인 웰즐리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요. 대학에서 여러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클린턴은 학생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졸업식 때는 졸업생 대표 연설자로도 뽑히는 등 대학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대학졸업 후 힐러리 클린턴은 명문 예일 로스쿨, 법률대학원에 진학하게 되는데요. 여기서 후일의 남편이 된 빌 클린턴을 만나게 되죠. 법률대학원을 졸업한 후 힐러리 클린턴은 뉴욕이나 워싱턴DC의 대형 법률 사무소에서 일할 수도 있었지만, 유명 여성 흑인 변호사가 이끄는 어린이 보호기금(Children's Defense Fund)이란 단체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성 정치인 힐러리 클린턴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

힐러리 클린턴이 이렇게 어린이, 그리고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게 된 데는 어머니 도로시 로댐의 영향이 컸습니다.

[녹취] 도로시 클린턴 회상 영상

어머니 도로시 로댐은 8살 때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고 14살 때부터 다른 사람 집의 식모로 들어갔다고 하는데요. 집주인 가정을 통해 처음으로 따뜻한 가정이 어떤 것인가를 보게 됐고 어머니 역시 그런 가정을 꿈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딸인 힐러리에게 전폭적인 지지와 사랑을 쏟아 부으며 훌륭한 여성으로 길러냈는데요. 힐러리 클린턴은 자신이 얼마나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를 대선 홍보 영상에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영부인 힐러리 클린턴”

1975년 빌 클린턴과 결혼한 힐러리 클린턴은 남편의 고향인 아칸소 주에 정착해 아칸소 법률대학원 교수로, 또 변호사로서 유명 법률회사에서 일하게 됩니다. 1978년 남편이 아칸소 주지사로 당선되면서 그 후 12년간 아칸소 주 영부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1993년, 남편 빌 클린턴이 미국의 42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미국의 영부인이 되는데요. 영부인이 되고 난 이후 국민건강보험 개혁 업무를 도맡아 진행할 정도로 활발한 정치 활동을 펼칩니다. 물론 이런 영부인의 영향력이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힐러리 클린턴은 이전과는 다른 영부인의 모습으로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시련도 있었는데요. 1998년 클린턴 대통령이 백악관 인턴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결국 빌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탄핵 논란이 일어났죠.

[녹취] 빌 클린턴

힐러리 클린턴은 하지만 결혼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고 밝히며 가정을 지키기로 결단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대중은 그녀가 보인 결단력과 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높은 지지를 보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의 또 다른 도전, 연방 상원의원 그리고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은 남편 빌 클린턴의 대통령 임기 말인 2000년 뉴욕 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에 선출되면서 미국 역대 대통령 부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선출직 고위 공직에 올랐습니다.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연방 상원의원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은 2008년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는데요. 당시 바락 오바마 후보에게 패하면서 민주당 후보 지명을 받지 못하고 대통령 꿈을 접어야만 했죠. 하지만 힐러리 클린턴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는 대범한 행보를 보이는데요. 경쟁자였던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국무장관직을 수용했던 겁니다. 힐러리 클린턴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국무장관으로 활동하는데요. 역대 해외 출장을 가장 많이 다닌 국무장관으로 남을 정도로 정력적으로 국무장관직을 수행했습니다. 물론 여러 난관도 있었죠. 특히 재임 기간 가장 힘들었던 순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은 2012년 리비아 벵가지 주재 미국 영사관 피습사건입니다.

[녹취]힐러리 클린턴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

당시 사건을 미 행정부가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논란이 일면서 클린턴 전 장관은 2013년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이 벵가지 사건은 대선후보가 된 힐러리 클린턴의 발목을 잡는 사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힐러리 클린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지난해 4월 12일, 2016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녹취] 힐러리 클린턴 대선 출마 선언 동영상

클린턴 전 장관은 인터넷에 올린 동영상에서 미국인들은 대변자를 필요로 하며, 자신이 바로 그 대변자가 되고 싶다면서, 민주당 후보 경선에 도전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이후 클린턴 후보는 민주당의 유력 대통령 후보로 손꼽히며 지지율 선두를 이어갔죠. 하지만 리비아 벵가지 주재 미국 영사관 피습사건에 대한 벵가지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가 진행되던 중에 클린턴 후보가 개인 이메일 계정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클린턴 후보가 국무장관 재임 시절에 정부 계정 이메일을 쓰지 않고 보안이 취약한 개인 계정 이메일을 쓰면서 국가 기밀이 누설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점이 제기된 건데요. 클린턴 후보는 기밀 사항을 개인 이메일로 주고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이후 클린턴 후보의 이메일에서 일급 기밀 내용이 일부 발견되면서 클린턴 후보는 신뢰성에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또 고액의 강연료와 클린턴 재단을 둘러싼 기부금 논란 같은 구설수도 뒤를 이었죠. 거기다 또 다른 민주당 대선 후보인 버니 샌더스 연방 상원의원이 돌풍을 일으키면서 클린턴 후보 뒤를 바짝 따라붙었는데요. 하지만 이런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정치, 외교 경험을 가진 대통령감은 클린턴 후보밖에 없다는 것이 클린턴 후보 지지자들의 생각입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민주당 대선 후보 중 한 명인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김현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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