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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사이드] 북한 핵실험이 남북교류에 미치는 영향


지난 12일 한국 정부가 북한 핵실험과 관련해 개성공단 출입경 인원을 운영에 필요한 최소 인원으로 제한한 가운데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에서 개성공단 차량이 임진강을 건너고 있다. (자료사진)

지난 12일 한국 정부가 북한 핵실험과 관련해 개성공단 출입경 인원을 운영에 필요한 최소 인원으로 제한한 가운데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에서 개성공단 차량이 임진강을 건너고 있다. (자료사진)

매주 주요 뉴스의 배경을 심층적으로 살펴보는 ‘뉴스 인사이드’ 입니다.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남북관계가 급격히 경색되면서 한국 정부와 민간단체들이 추진해 온 대북 사업들이 잇달아 중단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도발적 행동으로 남북교류가 영향을 받는 상황은 과거에도 예외가 아니었는데요, 조상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효과음 : 한국 방송 앵커] 지난해 남북교역액 사상 최대치 기록 설명]

지난해 남북 간 교역액은 27억1천349만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교착상태에 빠진 북한 핵 문제와 북한의 잇단 도발에도 개성공단 가동과 민간 차원의 교류가 꾸준히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또 지난해 8월, 북한의 비무장지대 목함지뢰 도발 이후 타결된 `8.25 합의'를 통해 오히려 남북 민간교류 활성화가 이뤄진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4차 핵실험은 8.25 남북 합의와 지금까지의 교류협력 활성화 분위기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았습니다.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한국 통일부 정준희 대변인의 발표 내용입니다.

[녹취 :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 “북한이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남북관계 발전을 도모하자 라는 8.25 합의를 위반했습니다. 핵실험한 것 자체가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남북 간 합의는 존중돼야 한다는 게 기본적 입장입니다. 북한이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를 바랍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을 `8.25 합의' 위반으로 규정하고 민간 차원의 대북 직접 교류를 허용하지 않는 등 남북 간 교류를 사실상 중지시켰습니다.

남북 간 교류는 지난 1990년대 초 남북경협 활성화 조치가 발표된 이래 북한의 1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 7월 금강산을 관광하던 한국인이 북한 군의 총에 맞아 숨지고, 이어 대북 전단으로 인한 북한의 12.1 조치가 실시되면서 남북교류는 급격하게 얼어붙었습니다.

북한은 이 조치를 통해 남북한 간 모든 교류협력과 경제 거래 목적의 인원이 육로로 통행하는 것을 제한했습니다. 또 개성공단 상주인원을 줄이고 남북 간 철도운행과 개성관광을 중단하는 한편 경협사무소도 폐쇄했습니다.

이로 인해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시 제정오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의 발언입니다.

[녹취: 제정오 당시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 “개성 같은 경우는 자재 하나까지 남측에서 가져가기 때문에 생산라인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60여 년 만에 개통된 경의선 철도가 끊기고 금강산과 개성 관광사업도 표류하면서 교류협력 사업이 지속될지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이 됐습니다.

얼어붙은 남북 교류협력 분위기는 북한의 2차 핵실험과 뒤이어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가 채택되면서 더욱 냉각됩니다.

이후 2009년 8월 북한이 12.1 조치를 전면 해제하면서 개성관광 사업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12.1 조치 이전으로 되돌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채 1 년이 지나지 않아 북한의 한국 해군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하면서 한국 정부는 5.24 제재 조치를 발표합니다. 이명박 당시 한국 대통령의 발표입니다.

[녹취 : 이명박 전 한국 대통령] “천안함을 침몰시키고 고귀한 우리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이 상황에서 더 이상의 교류협력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5.24 조치는 개성공단과 금강산을 제외한 방북을 불허하고, 남북 간 교역을 즉시 중단하며, 대북 신규투자 금지와 북한 선박의 남측 해역 운항 불허, 대북 지원사업을 원칙적으로 보류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특히 인도적 목적이라 해도 정부와의 사전협의 없이는 대북 지원을 할 수 없게 한 것은 인도주의 지원에 관한 한 다소 너그러웠던 과거 다른 조치들과 큰 차이점이었습니다.

5.24 조치는 2011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과 2013년 3차 핵실험, 그리고 이번 4차 핵실험으로 이어질 때까지 때에 따라 유연성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로 인해 지난 5년 간 남북교류는 크게 제약됐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런 와중에도 지난해부터 민간 차원의 방북과 대북 지원 활동에 대한 규제를 크게 완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왔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4차 핵실험 강행으로 이런 조치가 원점으로 되돌려지면서 남북 간 교류와 대북 지원 활동은 다시 한 번 얼어붙게 됐습니다.

VOA 뉴스 조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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