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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미국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미국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오늘은 VOA 김정우 기자 함께 합니다.

진행자) 자, 오늘은 어떤 주제를 알아볼까요?

기자) 네. 지난 5일 국제 해커 집단인 ‘어나니머스’가 KKK에 가입했거나 우호적인 사람 수백 명의 이름을 밝혔는데요. 오늘 알아볼 주제는 바로 이 ‘KKK’입니다. 참고로 ‘해커’라고 하면 남의 전산망에 침입해서 정보를 빼내거나 전산망의 기능을 망가뜨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진행자) ‘KKK’라면 미국에서 활동하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집단이죠?

기자) 맞습니다. 오랫동안 폭력을 행사하던 이 조직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인종 혐오 조직 가운데 가장 오래됐고 또 가장 악명이 높습니다. 원래 이 조직의 주된 목표는 흑인이었지만 이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유대인이나 동성애자, 이민자, 그리고 가톨릭 신자들도 공격했습니다.

진행자) ‘KKK’란 게 ‘쿠 클럭스 클랜’을 줄인 말이라고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기자) 맞습니다. ‘KKK’ 단의 창설자들은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었다는데요. 처음에 이들은 그리스말 ‘쿠클로스’를 조직 이름으로 정했답니다. 이 그리스말 ‘쿠클로스’에서 ‘원’이나 ‘회전’을 뜻하는 영어 ‘circle’과 ‘cycle’이 나왔죠? 그러다가 여기에 집단을 뜻하는 말인 ‘clan’을 덧붙여서 ‘쿠 클럭스 클랜’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앞머리 글자를 따서 ‘KKK’로 부르기도 합니다.

진행자) 노예제도를 두고 19세기 중반에 북부 연방과 남부 연합이 처절하게 싸웠는데요. 이 남북전쟁이 끝난 뒤에 KKK가 생겼죠?

기자) 맞습니다.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이 항복한 지 9개월이 채 안 되는 1865년 12월에 젊은 전직 남부 연합군 6명이 테네시 주 풀라스키에 있는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쿠 클럭스 클랜’이라는 비밀 조직을 결성하는데요.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이 ‘KKK’는 미국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세를 불리죠.

진행자) 그러니까 이 ‘KKK’는 내전이 끝나고 미국이 나라를 재건하기 시작하는 시기에 등장한 거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이 ‘KKK’ 단은 전직 남부군 사령관이나 병사, 남부 연합 정치인들, 그리고 교회 목사 등으로 조직됐는데요. 남북전쟁에서 죽은 남부군 병사들의 혼령을 자처했습니다.

진행자) 이들이 미국 역사에서 악명을 떨치게 되는 건 역시 잔인한 폭력 때문이었죠?

기자) 맞습니다. 이들은 하얀 두건을 뒤집어쓰고 다니면서 테러 행위를 일삼았습니다. ‘KKK’하면 흔히 백인 우월주의에 도전하는 사람들에 대한 구타나 살인, 성폭행, 방화, 불타는 십자가, 그리고 타르를 몸에 바르고 새 깃털을 뒤집어씌우는 것 같은 테러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진행자) ‘KKK’ 단의 공격 대상이 처음에는 주로 흑인 아니었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이들은 주로 남부에 사는 흑인들을 괴롭혔는데요. 하지만 백인이라도 흑인들을 도우면 ‘KKK’의 공격 대상이 됐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이렇게 폭력을 행사하는 조직이 남부에서 준동하는데 연방 정부가 가만히 있었던 건가요?

기자) 아닙니다. ‘KKK’ 문제가 심각해지니까 연방 의회가 1871년에 청문회를 열고 연방법으로 ‘KKK’ 단 활동을 막았습니다. ‘KKK’ 수뇌부도 폭력 문제가 심각해지자 이미 1869년에 조직을 해산한다고 명령했는데, 그러다가 1870년대 중반이 돼서야 ‘KKK’의 활동이 수그러드는데요. 이건 연방 의회가 만든 법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무엇이냐 하면 이때가 되면 남부 주 정부를 거의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장악하면서 속속 흑인들을 차별하는 조처들을 도입하는데요. 상황이 이렇게 되자 ‘KKK’단은 공식적으로는 사람들 눈에서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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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네. ‘생방송 여기는 워싱턴입니다 -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미국의 악명 높은 인종혐오 조직인 ‘KKK’, 즉 ‘쿠 클럭스 클랜’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습니다. 1870년대 중반에 모습을 감춘 ‘KKK’가 20세기 초에 들어서자 다시 활개 치기 시작하지 않습니까?

기자) 맞습니다. 남부에서 인종차별 체제가 자리를 잡자 사람들 뇌리에서 잊혔던 ‘KKK’가 20세기 초반, 구체적으로 1920년대에 다시 나타나는데요. 이번에는 이민자들 때문이었습니다.

진행자) 당시 미국에서 유럽에서 이민자들을 대거 받아들였죠?

기자) 그렇습니다. 특히 유대인들과 가톨릭교도들이 대거 미국으로 들어오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런 경향을 이용해서 ‘KKK’가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다시 등장한 ‘KKK’는 이제 흑인뿐만 아니라 동양인 같은 이민자나 동성애자 등도 적으로 삼죠? 이들은 1925년에 수도 워싱턴디시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는데요. 당시 조직원이 4백만 명에 달했고, 몇몇 주에서는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그럼 이때가 ‘KKK’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기자) 맞습니다. 바로 이때가 정점이었는데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성 추문이나 내부 권력 싸움, 연방 정부의 견제, 그리고 언론 폭로 등의 영향으로 급속하게 영향력을 잃어갑니다.

진행자) 그러다가 미국에서 민권 운동이 한창이었던 1960년대에 ‘KKK’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죠?

기자) 그렇습니다. 잘 아시네요. 60년대 들어서 흑인들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자는 민권 운동이 활발해지자 이런 움직임에 반대해서 ‘KKK’가 다시 수면 위로 나옵니다. 이 기간에 ‘KKK’가 폭탄 테러나 살인, 그리고 폭력을 저질러서 희생자가 나오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1963년 ‘KKK’가 앨라배마 주 버밍햄에 있는 한 기독교회에서 폭탄을 터뜨려 소녀 4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습니다.

진행자) 이들의 테러와 위협에도 결국 흑인 민권 운동은 성공하는데요. 그럼 60년대 이후의 ‘KKK’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기자) 네. 1970년대와 80년대 들어서 조직 내부 갈등이나 연방 정부의 방해, 그리고 이어지는 법정 싸움 탓에 조직이 크게 약해집니다. 이렇게 조직의 힘이 후퇴하자 일부 분파는 공개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서 자신들의 인종주의를 백인들을 위한 민권 운동으로 포장하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진행자) 그럼 ‘KKK’의 세력이 약해졌다고 하지만, 이 조직이 완전하게 사라진 건 아니네요?

기자) 물론입니다. 사실 지금 정확하게 몇 명이 ‘KKK’ 조직원인지는 알 수 없는데요. 다만 ‘남부 빈곤 법 센터’ 추정으로는 현재 조직원이 5천에서 8천 명 정도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남부 빈곤 법 센터’는 또 현재 ‘KKK와 연관된 단체가 미국 안에 모두 27개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미국 뉴스 따라잡기’ 김정우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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