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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미국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미국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박영서 기자 나와 있습니다.

진행자) 오늘 미국뉴스 따라잡기 시간에는 어떤 주제에 대해 알아볼까요?

기자) 네, 앞서 미국 뉴스 헤드라인 시간에도 들으신 것처럼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된 새로운 책이 출간돼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라면 미국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 사임까지 몰고 온, 1970년대초, 그야말로 미국을 뒤흔들었던 큰 정치적 사건인데요. 오늘 미국 뉴스 따라잡기 시간에는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해 전해드리겠습니다.

진행자) 아닌 게 아니라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지금 각 후보들 선거운동본부에서는 온갖 선거 전략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을 텐데요. 1970년대 사건이긴 하지만 이 워터게이트 사건이 시사하는 바가 꽤나 클 것 같습니다.

기자) 네. 미국인 유권자들이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덕목으로 중시하는 것들은 어떤 게 있을까요? 뭐, 지도력,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지혜, 포용력 등 물론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요.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정직성입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부정직한 정치적 접근이 얼마나 큰 파국을 맞는지 보여주는 산 교훈이라 하겠습니다.

진행자) 그럼 워터게이트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 좀 정리를 해보도록 하죠. ‘워터게이트’ 이게 실은 건물 이름이죠?

기자) 맞습니다. 워싱턴 D.C.시내,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국이 있는 건물에서 차로 한 10분,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건물 단지 이름입니다. 호텔도 들어서 있습니다. 1967년에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그냥 워싱턴 D.C에 있는 여느 호텔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곳이었는데요. 하지만 1972년에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면서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됐죠. 미국 역사의 중요한 현장이었던 이 워터게이트 건물은 지금도 포토맥 강변에 자리 잡고 있죠.

진행자) 1972년 당시 미국의 대통령은 리처드 닉슨이었죠?

기자) 맞습니다. 미국의 37대 대통령이죠. 공화당 출신으로, 부통령 직을 역임한 적도 있고요. 앞서 35대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지만 거의 정치 신인에 가까웠던 존 F 케네디 후보에게 패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었죠. 결국 1969년 대선에 다시 도전해 당시 미국을 이끌고 있었는데요. 미국의 대통령 임기는 4년이죠. 닉슨은 다시 한번 대통령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요. 그래서 다음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그 와중에 이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진 게 아닙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선거를 몇 달 앞두고 민주당이 민주당전국위원회 (Democratic National Committee, DNC)본부를 바로 이 워터게이트 건물에 꾸렸는데요. 그런데 여기에 5명의 괴한이 불법 침입했다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처음엔 그냥 단순한 절도 미수 사건 정도로 넘어가는 듯 했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경쟁자였던 민주당의 조지 맥거번 후보보다 닉슨의 지지율이 월등히 앞서고 있어서 닉슨이 아쉬울 게 별로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에 체포된 사람들 가운데 전직 미국 중앙정보국 출신인 사람도 있었고요, 또 이들의 수첩에서 닉슨 보좌관의 이름이라든가 백악관과 관련된 영문자 등이 발견되면서 이게 그냥 단순한 침입 사건이 아닐 것이라는 의혹이 점점 커지게 됐죠.

진행자) 하지만 닉슨 측은 이를 강력히 부인하지 않았습니까?

기자) 네, 파장이 가라앉지 않자, 결국 사건이 터진 뒤 2달 만에, 닉슨 대통령까지 나서서 워터게이트 침입 사건과 백악관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 11월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순조로운 항해를 하는 듯 했는데요. 하지만 사건은 결코 닉슨이 바라는 대로 흘러가진 않았습니다. 바로 이런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한 언론사 때문이었습니다.

진행자) 워싱턴포스트 신문 말하는 거죠?

기자) 맞습니다. 워싱턴포스트 신문에 근무하는 밥 우드워드 기자와 칼 번스타인 기자가 함께 꾸린 팀이 사건을 심층 보도하기 시작한 겁니다. 밥 우드워드 기자는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기 한해 전인 1971년 워싱턴포스트 신문사에 막 입사한, 서른도 채 안 되는 신출내기 기자였는데요. 당시 미국 정부 당국의 어떤 고위,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받은 정보를 토대로 연일 특집 기사를 내보내면서 백악관이 민주당 선거위원회 본부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폭로합니다.

진행자) 미국에서는 익명의 제보자, 은밀한 제보자들 일컬어 딥 스로트 (Deep Throat)라고도 부르는데요. 이렇게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 아닙니까?

기자) 맞습니다. 원래는 성인영화 제목이지만 당시 워싱턴 포스트 편집국장이었던 하워드 사이먼스가 이 익명의 제보자에게 붙여줬다고 합니다. 딥 스로트라는 말은 1974년에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이 출간한 ‘All the President’s Men’ '모두 대통령의 사람들'이라는 책을 통해 널리 퍼지게 됐습니다.

진행자) 그러면서 또 워터게이트 불법침입사건에 대한 재판도 진행되지 않았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사건 발생 이듬해인 1973년 1월에 민주당전국위원회 불법 침입 사건 피고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됐는데요. 이때 담당판사가 형량을 줄여준다는 거래 조건으로 관련 사실을 밝힐 것을 제안했는데 이게 받아들여지면서 사건이 급속하게 전개됐죠.

진행자) 재판에서 나온 증언들이 결국은 백악관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들 아니었습니까?

기자) 맞습니다. 그래서 결국 상원에서 특별위원회가 설치됐는데요. 여기서 워터게이트사건과 백악관이 모종의 연계가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 만한 증언과 자료들이 계속 나오면서 닉슨은 아주 심각한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자 닉슨이 꺼낸 카드는 자신은 전혀 몰랐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면서 측근들이 마음대로 한 일이었다며 최측근 보좌관들을 해임하고 법무장관까지 교체하기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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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생방송 여기는 워싱턴입니다. 미국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1970년대 미국 정치를 흔들어놓은 사건, 미국 정치사에 큰 오점이자 교훈을 남긴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해 알아보고 있습니다. 사건이 점점 확대되면서 닉슨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정치 권력이 수사를 방해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미국 사법당국도 결코 호락호락 하지는 않았죠?

기자) 맞습니다. 의혹이 점점 증폭되자 특별검사를 임명해서 사건에 대한 철저하고 독립적인 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고요. 그래서 신임 엘리엇 리처드슨 법무장관이 아치볼트 콕스 검사를 특별검사로 임명합니다. 그리고 콕스 검사의 지휘 아래 상원 특별위원회 심문 과정은 방송을 통해 계속 국민에게 전달됐고요. 닉슨은 점점 더 궁지에 빠지게 됩니다.

진행자) 그러면 조사 과정에서 닉슨이 도청을 지시한 것이 드러난 건가요?

기자) 그건 아닙니다. 닉슨이 워터게이트를 직접 지시했다는 결정적 증거는 지금도 없습니다. 하지만 백악관 고위 관료들이 소환되는 과정에서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요. 거액 탈세 의혹부터 불법 도청 의혹에 이르기까지 줄줄이 제기되면서 정치적 치명타를 입게 됐고요. 결국 대통령 탄핵 움직임까지 일어나게 됩니다.

진행자) 거기에 결정적 계기가 된 게 이번에 우드워드 기자가 새로 발간한 책 속의 주인공인 알렉산더 버터필드 대통령 보좌관의 증언이었죠.

기자) 맞습니다. 버터필드는 증언 당시에는 연방항공국장을 맡고 있었는데요. 특별위원회에 나와서 자신이 백악관에서 보좌관으로 일할 때, 닉슨 지시로 대통령 집무실의 대화를 녹음하는 자동장치가 설치돼 있다고 폭로한 겁니다. 특별위원회는 이 녹음 테이프를 제출할 것을 닉슨에 요구했고요. 닉슨은 버티다 제출합니다. 그러니까 시작은 워터게이트 도청 지시에 관한 의혹이었는데요. 사실 여부를 떠나 닉슨은 도덕성과 신뢰성에 치명타를 입고 1974년 8월 결국 사임하고 맙니다. 그러면서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초로 중도에 사퇴하는 역사적 오명까지 얻게 됩니다.

진행자) 오늘날 권력형 비리나 정치적 사건에 대해 말할 때 ‘무슨 무슨 게이트’ 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하는데요. 미국 뿐만 아니라 비영어권 국가에서도 쓰이는 이 말, 바로 이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비롯된 거죠?

기자) 맞습니다. 이 워터게이트 사건은 또 언론의 역할을 다시 한번 부각시키는 계기가 돼서 이후로 언론들이 심층 보도를 많이 다루게 됐고요. 또 하나 앞서 잠시 언급해드린 딥 스로트, 그러니까 익명의 제보자들에 대한 신원 보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워싱턴포스트에 제보한 사람은 당시 미 연방수사국의 제 2인자였던 윌리엄 마크 펠트 부국장이었는데요. 그의 실체가 세상에 드러난 게 무려 30년도 훨씬 넘어서였습니다. 그것도 워싱턴포스트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의 가족들을 통해서였는데요. 이 점 역시 워싱턴포스트 사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겠습니다.

진행자) 네, 미국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박영서 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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