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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첫 '대북 원점타격' 몽금포 작전, 66년 만에 빛 봐


한국 해군이 최초의 '대북 응징보복작전'인 '몽금포 작전'을 기리는 전승비 제막식을 오는 15일 인천 월미공원에서 연다고 밝혔다. 몽금포 작전은 광복 직후 북한군이 아군 함정과 미국 군사고문단장 전용 보트를 납북하는 등 불법 도발을 일삼자 우리 해군이 1949년 8월 27일 보복응징을 위해 감행한 군사작전이다.
한국 해군이 최초의 '대북 응징보복작전'인 '몽금포 작전'을 기리는 전승비 제막식을 오는 15일 인천 월미공원에서 연다고 밝혔다. 몽금포 작전은 광복 직후 북한군이 아군 함정과 미국 군사고문단장 전용 보트를 납북하는 등 불법 도발을 일삼자 우리 해군이 1949년 8월 27일 보복응징을 위해 감행한 군사작전이다.

지난 1949년 북한의 도발에 대한 한국 군의 첫 응징작전으로 펼쳐졌던 ‘몽금포 작전’을 기리는 전승비가 66년 만에 세워집니다. 6.25 한국전쟁 북침설의 근거로 잘못 인식됐던 이 작전의 진실도 바로 잡게 됐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해군은 한국 군 최초의 ‘대북 응징 보복작전’인 ‘몽금포 작전’을 기리는 전승비 제막식이 15일 인천 월미공원에서 열린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해군에 따르면 몽금포 작전은 광복 직후 한국 함정과 미국 군사고문단장 전용 보트를 납치하는 등 북한측의 불법 도발이 빈번하게 자행되자 한국 해군이 1949년 8월 17일 보복 응징을 위해 감행한 군사작전입니다.

몽금포 작전 당시 해군은 이승만 대통령의 승인 아래 함정 5척과 특공대원 20명을 북한 황해도 몽금포항에 보내 북한 경비정 4척을 격침하고 1척을 나포했고 북한군 5명도 생포했습니다.

북한군의 잦은 도발에 대응해 원점을 직접 공격한 과감한 작전이었습니다.

작전은 성공적으로 이뤄졌지만 전승비가 세워지기까지는 무려 66년이 걸렸습니다.

존 무쵸 당시 주한 미국 대사가 이 작전을 한국군이 불법적으로 38선을 넘어가 벌인 사건으로 규정하고 한국 정부에 항의함에 따라 이 작전이 제대로 평가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한 때문입니다. 물론 작전을 성공한 장병들도 포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북한이 이 작전을 ‘6·25 전쟁의 도화선’으로 규정하고 한국 학계 일부에서도 이에 동조하면서 몽금포 작전은 ‘북침설’의 근거로까지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몽금포 작전이 재조명을 받게 된 것은 6.25 한국전쟁이 북한의 남침에 의한 전쟁이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 게 계기가 됐습니다. 한국 국방부의 권기현 외신대변인입니다.

[녹취: 권기현 국방부 외신대변인] “1990년대 소련이 붕괴되고 외교문서가 공개됨에 따라 6.25 전쟁이 북한에 의한 침략전쟁이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밝혀져 더 이상의 논란이 없게 됐습니다.”

이에 따라 몽금포 작전의 진실을 후세에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한국 해군은 지난 2012년 9월 전승비 건립 사업에 착수했습니다.

이와 함께 이 작전에 참가한 장병들에 대한 포상 건의도 받아들여져 한국 정부는 지난 8일 국무회의에서 공정식 전 해병대사령관에게 가장 높은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그리고 함명수 전 해군참모총장에게 을지무공훈장, 김상길 예비역 소장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한국 해군본부 공보과장인 최태복 대령은 이 작전은 창설된지 3년밖에 안 된 당시 한국 해군이 독자적으로 수행한 작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크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이 전승비가 북한의 도발에 대한 한국 군의 강력한 대응 의지를 천명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최태복 해군본부 공보과장] “북한에 대해선 도발하면 가차없이 응징한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로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전승비는 가로 13m, 세로 10m, 높이 7.4m로 특공대원들이 당시 작전에 사용했던 함정인 JMS-302호를 타고 파도를 헤치며 몽금포항으로 진격하는 모습을 형상화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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