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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미국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미국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박영서 기자 나와 있습니다.

진행자) 자 오늘은 어떤 주제에 대해 알아볼까요?

기자) 네, 지금 미국에서 최고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뭐니 뭐니 해도 대통령 후보 TV 토론회가 아닐까 싶은데요. 오늘은 이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진행자) 먼저 기본적인 질문부터 해보겠습니다. 대통령 후보들끼리 이렇게 TV 토론을 하는 이유가 뭔가요?

기자) 네, 대통령을 뽑을 유권자들로서는 어떤 후보가 정치, 경제 , 사회, 에너지, 국가 안보 같은 문제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정견을 갖고 있는지 알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러 유세장을 찾아가거나 기사나 자료 같은 걸 찾아보지 않는 한 사실 쉽지 않은 일이죠. 그런데 대통령 후보들이 이렇게 TV에 나와 자신의 정책과 관심사를 설명한다면, 유권자들은 후보들 간에 어떤 정책에서 차이점이 있는지, 또 그래서 어떤 후보의 정책이 국민에게, 그리고 국가에 가장 도움이 될 것인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됩니다.

진행자) 이런 미국의 대통령 후보 토론회는 언제부터 시작된 건가요?

기자) 네, 미국의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이제 대통령 후보 토론은 하나의 정치 과정이자 제도처럼 자리잡고 있는데요. 미국에서 이렇게 대통령 후보 토론회가 제일 처음 열린 건 1960년 존 F 케네디 후보와 닉슨 당시 부통령간에 있었던 토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에도 대통령 후보 토론회와 맥을 같이 할 만한 비슷한 정치 토론들은 제법 있었습니다.

진행자) 일 테면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의 유명한 정치 토론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기자) 맞습니다. 에이브라함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인 1858년에 일리노이 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적이 있는데요. 당시 링컨은 경쟁자였던 공화당의 스티븐 더글러스 주지사에게 당시 가장 큰 사회적 쟁점이었던 노예제 같은 현안들에 대해 직접 토론을 하자고 제의했었습니다. 그러자 더글러스 주지사가 이를 받아들였고요. 그래서 두 후보가 모두 7차례에 걸쳐 토론을 벌였는데요. 두 사람의 격렬한 토론이 세간의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켰습니다. 링컨은 당시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패배했지만 이 토론회를 통해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게 됐고요. 이어서 2년뒤인 1860년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진행자) 당시 링컨과 더글러스의 토론 방식이 좀 독특했죠?

기자) 네, 사회자가 질문하는 게 아니라 후보자가 서로 직접 질문과 대답을 하는 형식이었는데요. 한 후보자가 먼저 1시간 연설을 하고 나면 다른 후보가 그에 대한 반박과 질문을 1시간 30분 동안 하고 , 그리고 나면 다시 처음 후보가 30분동안 이에 대한 마무리 발언을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도 이렇게 일대일 직접 토론하는 방식을 가리켜 링컨-더글러스 방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진행자) 미국은 민주주의를 기초로 설립된 나라다 보니까 일찍이 이런 토론문화가 정착했는데요. 당연히 정치 분야에서도 토론이 빠질 순 없었던 거군요.

기자) 맞습니다. 이후에도 공화당과 민주당을 중심으로 정치 토론은 계속 이어져 왔고요. 특히 1920년대 라디오가 보급되면서부터는 이런 토론들이 중계돼 유권자들을 라디오 앞으로 모이게 했습니다. 그러다 텔레비전이 대중화 되면서 마침내 역사상 첫 대중적인 후보간 TV 토론회가 열린 겁니다.

진행자) 그게 바로 그 유명한 존 F 케네디 후보와 닉슨 부통령간의 토론이죠?

기자) 그렇습니다. 1960년 9월 26일 대통령 후보로 나선 민주당의 존 F 케네디 상원의원과 공화당의 닉슨 부통령간에 있었던 이 TV 토론을 공식적으로 미국의 첫 번째 대통령 후보 토론이라고 합니다. 당시 시카고 CBS 방송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이 토론회는 전국으로 중계됐는데요. 그때는 사회자 1명과 언론인 4명이 질문단으로 참석했습니다.

진행자) 그러니까 사회자와 질문단이 어떤 현안에 대해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해 후보들이 대답을 하는 형식이었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토론회가 있기 전까지는 닉슨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닉슨은 현직 부통령에다가 이미 라디오 정치 토론에 익숙한 정치 베테랑이었습니다. 반면 케네디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신인이었는데요. 하지만 막상 토론이 시작되자 사람들의 시선이 케네디에게 쏠렸습니다.

진행자) 그 이유가 뭐였을까요?

기자) 네, 당시 닉슨은 40대 후반이었지만 케네디에 비하면 늙고 자신감 없는 모습으로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케네디는 젊고 신선한 모습으로 화면을 응시하며 질문에 답을 거침없이 해나갔습니다. 케네디와 닉슨의 후보는 첫 토론회를 포함해 모두 4차례 진행됐는데요. 결국 토론회에서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존 F 케네디가 미국의 3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게 됩니다.

진행자) 텔레비전 토론이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당시 두 사람의 토론은 TV와 라디오로 동시 중계됐었는데요. 라디오 중계를 들은 기자들은 무승부 또는 닉슨이 더 잘했다고 평가했지만 TV중계를 지켜본 기자들은 케네디가 압도적으로 우세했다는 평가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케네디와 닉슨의 이 TV 토론은 같은 내용이어도 보여지는 것에 따라 민심이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좋은 예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Sting///

진행자) 미국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대통령 TV토론회에 대해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통령 후보 토론회가 반드시 개최돼야 한다고 법으로 규정돼 있는 건 아니죠?

기자) 그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도 1940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도전자 웬델 윌키에게 토론을 제의받은 적이 있는데요. 거부했습니다. 또 1960년 케네디와 닉슨 간 후보 토론이 있고 난 후 다음 대선인 1964년과 1968년, 1972년에는 줄곧 대통령 후보 토론회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1976년 민주당 소속으로 조지아 주지사를 지낸 지미 카터 후보와 공화당 소속의 제랄드 포드 대통령이 TV 공개 토론회를 가진 게 두 번째입니다.

진행자) 이때부터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 토론이 일종의 필수적 과정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죠?

기자)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토론회를 시작으로 오늘날 같은 개념의 대통령 후보 토론회가 정립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두 사람은 모두 3차례의 토론을 가졌습니다. 각기 주제를 달리해서 첫 번째 토론 때는 국내 현안, 두 번째 토론에서는 대외정책, 그리고 세 번째 토론은 전반적인 현안을 다 다루도록 했었는데요.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런 토론 형식이 그대로 적용돼 모두 3차례 진행되고 있고요. 부통령 후보들 간의 토론회도 이 때 처음 열렸습니다.

진행자) 대통령 후보 토론회는 어떤 식으로 진행됩니까 ?

기자) 네, 대체적으로 공화당 후보 1명과 민주당 후보 1명이 참가하는 구도인데요. 이 토론에 참가할 수 있는 후보는 전국 주요 5개 여론조사에서 15% 이상의 지지를 받는 후보라고 규정돼 있습니다. 그리고 후보들끼리 사전에 진행방식을 합의한 적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사회자와 질문단으로 구성된 사람들이 후보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진행자) 대통령 후보 토론회를 주관하는 단체는 어딘가요?

기자) 네, 여성유권자연맹이라는 단체가 1976년 카터와 포드 간 후보 토론회를 시작으로 1984년 토론까지 주관해왔고요. 그러다 1987년 공화당과 민주당이 주도해서 비영리 기구인 대통령 후보토론위원회를 설립한 이래 지금까지 이 단체가 대통령 후보 토론회를 주관해오고 있습니다. 내년 대통령 후보 토론회 일정은 아직 나오지 않았고요. 현재는 토론회 사회 신청자 명단만 공개된 상태입니다.

진행자) 그러니까 요즘 화제를 불러 일으킨 폭스 뉴스 방송의 TV토론 같은 건 정당 후보들끼리의 예비토론회군요.

기자) 맞습니다. 대통령 후보토론위원회가 주관하는 토론회에 앞서 공화당 전국위원회나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후보들의 토론회 일정을 잡는 겁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에 따르면 내년 3월까지 거의 매달 한 번이나 두 번씩 총 12번의 예비토론회를 가질 예정이고요. 민주당의 경우 10월을 시작으로 내년 1월까지 6번의 예비토론회를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이런 예비 토론회를 거쳐 각각 전당대회 경선을 통해 대선에 출마할 후보를 선출하게 됩니다.

진행자 ) TV토론을 잘 못해서 망신을 당한 사례도 좀 있었죠?

기자) 네 ,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201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릭 페리 전 텍사스 주 주지사가 있죠. 당시 릭 페리 후보는 공화당 경선 후보 TV 토론회에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없애버리겠다며 정부부처 3곳의 이름을 거론하다 한 곳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끙끙댔습니다. 그러다 옆에 있는 다른 후보들의 조롱까지 받는 모습이 고스란히 TV로 중계되고 말았는데요. 여론의 뭇매를 맞다 결국 사퇴까지 하고 말았습니다.

진행자) 미국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박영서 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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