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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 철수 도운 루니 전 제독 "진정한 영웅은 1만4천 북한 피난민들"


6.25 전쟁 당시 피난민들.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자료사진)

6.25 전쟁 당시 피난민들.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자료사진)

6.25 한국전쟁이 오늘 (27일)로 정전 62주년을 맞았습니다. 전쟁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워주기도 하는데요, 대표적인 예가 1950년 12월 수많은 북한 피란민들의 생명을 구한 미군의 흥남철수 작전입니다. 당시 피란민 1만4천 명의 목숨을 구한 미 상선 메리디스 빅토리아 호의 선원 2 명이 아직 생존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명인 로버트 루니 씨가 최근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윌슨센터를 방문해 당시 생생한 기억들을 회고했습니다. 루니 씨는 이후 미 해군 제독까지 지냈는데요. 루니 전 제독은 흥남철수의 진정한 영웅은 구출 결단을 내린 라루 선장과 자유를 위해 용감히 탈출한 북한 피난민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루니 전 제독의 윌슨센터 증언을 김영권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녹취: 음악 굳세어라 금순아]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흥남철수의 상징적인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를 듣고 계십니다.

1950년 12월23일 미 상선 메리디스 빅토리아 호는 흥남부두에 마지막 남은 피난민 1만 4천 명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당시 메리디스 빅토리아 호의 1등 항해사로 피난민 구출에 참여했던 로버트 루니 전 제독은 당시 구출이 매우 악조건 속에서 이뤄졌다고 회고했습니다.

[녹취: 루니 전 제독] “This is in the middle of winter freezing cold out there, the Chinese were firing into the port..…”

한겨울 강추위 속에 중공군이 흥남부두로 포탄을 쏘며 진격해 오고 미군이 이를 방어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구출 작전이 이뤄졌다는 겁니다.

루니 전 제독은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피난민 구출에 나선 것은 레너드 라루 선장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루니 전 제독] “He just responded to the Army representative he said I will take my ship in…

당시 미 육군 제10군단장인 아몬드 장군은 위험한 상황 때문에 라루 선장에게 구출을 자원할 수 있는지 물었고, 라루 선장은 주저하지 않고 이를 결단했다는 겁니다.

루니 전 제독은 당시 메리디스 빅토리아 호의 임무가 탱크와 무기 등 미 군수품을 운반하는 것이었고 선박은 승무원을 제외하면 12명 만을 더 태울 수 있도록 제조됐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베테랑으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라루 선장은 피난민들을 태울 수 있도록 선체 일부를 개조한 뒤 바로 부두로 향할 것을 선원들에게 지시했습니다.

루니 전 제독은 전쟁이 끝난 뒤 성 베네딕토회 수도사로 헌신한 라루 선장에게 당시의 심정을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루니 전 제독] “He said the answer is in the holy bible and with that reached over…

라루 선장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란 성경 구절에 따라 그저 당연히 해야 할 도리를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루니 전 제독은 이런 라루 선장의 결단에 따라 피난민 1만 4천 명을 모두 태우는 데 12 시간에서 13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선원들은 특히 피난민들을 서둘러 배에 진입시키기 위해 당시 유일하게 아는 한국말인 ‘빨리빨리’ 를 반복했다고 회고했습니다.

[녹취: 루니 전 제독] “One word we all learned in Korean was 빨리빨리…”

삶과 죽음의 선상에서 피난민들은 목숨을 걸고 배에 올라탔고 배는 큰 사고 없이 12월 23일 출항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배 안에는 피난민들을 위한 보온 시설이나 마실 물이 전혀 없었고 선실에는 빛 조차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배 안에는 전쟁에 끌려간 젊은이들 대신 노인들과 여성들, 어린이들이 다수였습니다.

루니 전 제독은 노인들이 추위에 떨고 있는 손자손녀들을 큰 겉옷으로 폭 감싸고 있는 장면들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루니 전 제독] “There were elderly men who were coming aboard coming children where they could not…”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피난민들은 오직 자유에 대한 소망으로 잘 버텼고 배는 사흘을 항해한 뒤 부산을 지나 12월26일 거제도에 안착했습니다.

루니 전 제독은 사흘 간의 항해 기간 동안 생명의 신비를 경험하는 놀라운 일도 목격했다고 말했습니다. 임신부들이 선원실에서 아기 5 명을 출산했고 선원들은 한국말을 몰라 이름을 ‘김치 1, 김치 2, 3, 4, 5’ 로 붙였다는 겁니다.

[녹취: 루니 전 제독] “We named each of them Kimchi 1,2,3,4 and 5…”

1만 4천 명의 피난민 구출은 세계 전쟁역사에서도 찾기 힘든 기적으로 기록됐고 메리디스 빅토리아 호의 선장과 선원들은 이후 한국인들과 미국인들에게서 영웅 칭호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루니 전 제독은 흥남철수의 진정한 영웅은 자유를 찾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향을 떠난 북한의 용기 있는 피난민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루니 전 제독] “The true heroes in this case were Korean people themselves….”

피난민들은 해방 후 5년 간 공산주의 밑에서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고 오직 자유를 위해 탈출했을 뿐아니라 한국의 놀라운 성장에 기여한 진정한 영웅들이란 겁니다.

루니 전 제독은 또 흥남철수는 폭격과 사살이 난무하는 전쟁 속에서도 생명을 구출할 수 있다는 소중한 의미를 일깨워줬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라루 선장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긴 말을 떠올렸습니다.

[녹취: 루니 전 제독] “He said God’s hand was at the helm of my ship….”

“하느님의 손이 당시 메리디스 빅토리아 호의 키에 임했던 겁니다. 적의 땅이라 할지라도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반드시 있습니다.”

라루 선장은 “훌륭한 뱃사람일 뿐아니라 위대한 가치와 사랑의 소유자"였다고 말하는 루니 전 제독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고 있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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