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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메이지시대 시설 세계유산 등재...한-일 견해차 여전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결정됐으며, 한국 정부가 집요하게 요구해온 '조선인 강제노역'이 주석과 연계되는 방식으로 반영됐다. 사진은 조선인 징용현장인 일본 나가사키 조선소.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결정됐으며, 한국 정부가 집요하게 요구해온 '조선인 강제노역'이 주석과 연계되는 방식으로 반영됐다. 사진은 조선인 징용현장인 일본 나가사키 조선소.

최근 일본 메이지시대 산업유산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습니다. 세계유산에는 일제 시대 한국인들이 강제노동을 했던 현장들도 포함됐는데요. 한국과 일본은 등재 결정이 난 이후에도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조은정 기자와 자세한 내용 살펴보겠습니다.

진행자) 과거 한반도를 병합하고 한국인들을 강제동원 한 일본의 침략 행위에 대해서는 우리 북한 청취자들도 큰 관심을 갖고 있는데요. 최근 이 과거사 문제를 두고 한국과 일본이 정면 승부를 펼쳤죠?

기자) 예. 일본 메이지시대 산업유산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문제를 놓고 두 나라가 외교전을 펼쳤습니다. 이들 산업 현장 중 일부가 일제 강점기 때 한국인들이 강제동원 된 곳이어서 논란이 된 것이죠. 결론적으로는 한국과 일본이 합의를 봤고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지난 5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회의에서 일본의 8개 현에 있는 제철소, 조선소, 탄광 유적 등 근대화 산업시설 23 곳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습니다. 유네스코는 이들 산업유산이 일본이 19세기 서양의 기술을 국내적 필요와 사회적 전통에 따라 바꿔 일본식 산업구조 형성에 기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습니다.

진행자) 세계유산 등재는 보편적 가치를 지닌 인류의 소중한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보호, 보존하기 위한 조치 아닙니까? 한국 측에서는 한국인들이 혹사됐던 곳이 이런 지정을 받는 데 대해 거부감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기자) 그렇습니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당초 등재 신청 된 산업시설 23 곳 중 한국인들이 강제노역을 했던 7 곳은 등재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었는데요. 이후 등재는 하되 한국인들이 강제노동을 했다는 점이 반영되도록 입장을 다소 완화했습니다.

진행자) 한국인 강제동원과 관련해서 지금까지 일본의 입장을 비춰보면 한국의 요구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기자) 예. 일본은 당초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하면서 그 시기를 메이지 시대, 즉 1868년에서 1912년으로 한정했는데요. 이는 1910년 이후 일본의 한국 강점 시기를 피하고, 또 한국인 강제동원 문제를 언급하지 않기 위한 조치로 분석됐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한국과 합의를 볼 수밖에 없도록 분위기가 조성됐는데요.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ICOMOS가 올해 5월에 등재 권고를 하면서,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했기 때문입니다. 또 세계유산위원회 의장국인 독일은 한국과 일본을 포함해 세계유산위원국들이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일본 유산에 대한 심의를 미루겠다고 밝히면서 일본이 부담감을 느끼게 됐죠.

진행자) 그래서 한국인들이 이런 시설들에서 강제노역을 당했다고 등재 결정문에 명시됐나요?

진행자) 결정문 본문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결정문 주석에 “일본의 발언을 세계유산위원회는 주목한다”고 표현했고요, 일본이 대표 발언을 통해 조선인 강제동원을 인정한 내용을 토의 기록으로 남겨졌습니다. 사토 구니 유네스코 주재 일본대사가 지난 5일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밝힌 내용 들어보시죠.

[녹취: 사토 대사] "a large number of Koreans and others who were brought against.."

사토 대사는 “일본은 1940년대에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 아래서 강제로 노역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도 징용정책을 시행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한국 측은 이날 등재 결정 후 어떤 입장을 밝혔나요?

기자) 이에 대해서는 조태열 한국 외교부 2차관이 위원회 회의에서 밝힌 내용 들어보시죠.

[녹취: 조 차관] "today’s decision marks another important step toward.. "

조태열 차관은 “오늘의 결정이 희생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기억하고 역사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며,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적 진실 또한 객관적으로 반영돼야 한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합의를 이루고 유네스코 등재가 이뤄진 지 며칠도 안 돼서 두 나라가 다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고요?

기자) 예.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등재 결정 직후 도쿄에서 기자들에게 사토 대사의 발언 중 `forced to work' 란 영어 표현이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forced to work가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시다 외무상이 명확히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언론에 제공한 번역에 따르면, forced to work는 ‘하타라카사레타’ 즉 ‘하고 싶지 않은데 일하게 됐다’로 번역됐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 외교부는 ‘영문이 정본’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진행자) 마지막으로 이번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시설들 중에 한국인들이 강제동원된 현장들을 좀 소개해 주시죠.

기자) 예. 등재된 산업유산 23 곳 중 7 곳에 한국인이 대규모로 강제동원됐습니다. 한국 정부에 따르면, 이들 7 곳에 약 5만7천9백 명에 달하는 한국인 노무자가 강제동원됐고, 이 중 94 명이 일하다가 사망하고 5 명이 행방불명 됐습니다. 특히 한국인들이 대규모로 차출됐던 나가사키 조선소는 ‘무사시’ 등 각종 전함을 만든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밖에 일본 최초의 현대적 탄광들인 다카시마 탄광, 미이케 탄광에도 한국인들이 많이 동원됐고, 야하다 제철소에도 동원됐습니다.

진행자) 가장 주목되는 시설은 어디인가요?

기자) 아무래도 ‘지옥도’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하시마 탄광입니다. 나가사키 항에서 조금 떨어진 해저탄광인데요. 매우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악명 높았습니다. 탄광이 바다 밑 지하 1천m까지 들어가서, 탄을 캐다가 바닷물이 갱내로 흘러 들어오고, 작업 중 사고가 자주 일어났고요. 조선인과 중국인 징용자들은 이 곳에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하루 12시간 이상의 혹독한 노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곳에서 일하던 한국인들의 사진을 봤는데, 제대로 먹지 못해 뼈가 앙상했습니다.

진행자) 지금까지 조은정 기자와 함께 일본 메이지시대 산업유산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내용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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