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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65주년 기념, 참전용사 경험 듣는 토론회 열려


25일 한국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귀환용사 목소리로 6.25전쟁을 듣다" 토론회가 열렸다.

25일 한국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귀환용사 목소리로 6.25전쟁을 듣다" 토론회가 열렸다.

6.25전쟁 65주년을 맞은 오늘 (25일), 한국 국회에서는 전쟁 중 포로로 북한에 잡혀 있다 탈출한 국군 용사들의 경험을 듣는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토론회에 참석한 국군 용사들은 아직도 북한에 남아 있는 국군 포로들의 조속한 귀환을 위해 한국 정부가 적극 나서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서울에서 박은정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녹취: 현장음]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 원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귀환 한국군 용사와 관련 학자들, 그리고 국회의원들입니다. 6.25한국전쟁 65주년을 맞이해 귀환한 한국 군 포로들의 목소리로 6.25 한국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린데요, 먼저 발제를 한 사람은 정재호 NKDB정착지원본부장. 정재호본부장은 한국 군 포로 현황에 대해 짚어보고 이에 대한 북한과 한국의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녹취: 정재호 NKDB 정착지원본부장] “50년도 12월 달에 `평양방송'에서 6만 5천 명의 포로가 있다고 주장을 했고, 51년도 6월 25일 날 6.25전쟁 발발1주년이 되는 해에 10만8천257 명의 포로가 있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51년 12월 18일 이제 정전협정이나 협상이 시작이 되면서 단지 국군포로 7천142 명만 있다고 수정해서 얘기 합니다. 그 소리는 뭐냐면 갑자기 10만 명의 포로가 만 명으로 줄어든 거죠. 그러니까 북한은 처음부터 국군포로들을 돌려 보내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발표가 끝나고, 귀환 한국 군 용사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참석한 이 귀환 한국 군은 당시에 어떤 사연으로 포로가 됐고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자리에 서게 됐는지 힘겹게 입을 열었습니다.

[녹취: 귀환 한국 군 용사] “ 저는 지난 6.25전쟁 때 백골부대 병사였습니다. 51년 2월 10일 경에는 어디로 갔는가.. 강원도 횡성군 어느 한 고지에 당도했습니다. 바로 이 고지는 북한 군의 고지보다 좀 낮았습니다. 우리가 차지한 것이.. 그런데 51년 5월 12일 날 새벽 4시 경에 지금 전방에 나갔던 보병부대들이 보병들이 지금 후퇴해 들어온단 말이야, 대대지원 쪽으로 밀리거든요, 그런데 조금 있더니 괴상한 나팔소리가 난단 말이야. 아주 처량하게.. 조금 있더니 북한 군의 기관총 집중사격이 계속 집중되는데, 그 때 우리 전우들이 많이 전사했습니다. 그 쪽에 대대장, 우린 대대장만 쳐다보고 있는데 대대장이 이 골짝으로 내려가라.. 그래서 그 누구 몽땅 한 2백 명이거든요, 몽땅 쓸어내려갔어요. 그래서 결국 우리는 그날 북한 군의 포로가 된 겁니다.”

이 귀환 한국 군 용사는 북한에 남겨진 수많은 한국 군 포로들과, 힘겨운 과정을 거쳐 탈북했지만 한국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동료들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그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녹취: 귀환 한국 군 용사] “앉아계신 이원삼 어르신은 지금 93인데, 북한땅에 7남매를 두고 왔는데 지금 소식도 모릅니다. 감감무소식입니다. 김성택 어르신도 그렇고 그 다음에 여러 어르신들은 이 한국 땅에 왔지만 자기가 북한에서 광산에서 노력하다 손을 잘려서 고생하고, 그 다음에 눈 그래서 고생하고 그 다음에 작년에 순직한 리춘삼 어르신은 하루종일 앉아서 모타를 계속 만들었단 말이에요, 과제가 그거 몇 천 개를 만드는 과제를 안 하면 죽는단 말이에요. 그래서 계속 앉아서 그걸 하다가 허리 꼬부라져서 대한민국에 와서도 계속 꼬부리고 사시다가 작년에 순직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국군 귀환용사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노력을 했지만은 이 한국에 오니까 너무 섭섭한 게 많습니다.”

이 회의에는 많은 6.25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함께 했는데요, 귀환용사의 모습을 보고 이야기를 들으니까 당시의 처참했던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녹취: 참전용사] “6월 25일 날 그 날이 공휴일이 돼 가지고 군인들이 죄 휴가를 가고 외출을 나가고 없는 이 사이에 쳐들어온 거다 이거지.. 그래 가지고 아휴, 그 때야 한창 때니까 죽지 않으면 살기고 그냥 이렇게 하고 저거 하는 거지 그냥 누구한테 죽고 살고 그게 뭐 두려운 게 있나요?”

“육박전이라는 말 들어봤을 거야, 육박전.. 그러한 치열한 전쟁이라는 것만 알면 되고..”

“아주 최전방에서, 이 소총소대라 하면 이건 최전방입니다. 이 소총대원으로 최전방에서 휴전이 될 때 까지 싸웠어요.”

전쟁 당시 10대의 어린 나이였던 참전용사들도 많은데요.

[녹취: 참전용사] “난 해병대 출신입니다. 저는 그 당시 고등학교 1학년, 만 16살이었었어요, 그랬는데 전쟁이 한참 하니까 학교에 가봤자 공부가 됩니까, 수업도 아무 것도 못하고 학교는 어떤 때 더러 폭격 맞아갖고 학교가 다 짜부러진 이런 일도 있었고, 공부를 못하니 우리 클래스 몇 명이 모여가지고, 야… 이럴 바에는 전투나 하러 가자, 입대해 가지고 말이야.. 그래 가지고 해병대 932부대라는 데를 갔어요. 사정사정 해 가지고 나이 어려서 안 받아 준다는 걸 두 번 세 번 찾아 가 가지고 사정사정해서 입대 승낙을 받았다고. 군번도 못 받고 군번없는 소년 해병이야. ”

참전용사들은 다시 떠올리기가 괴로울 정도로 아픈 기억이지만 이런 일들을 잊지 않고 후세대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자리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녹취: 참전용사] “지금 사람들은 상상도 못하고 거짓말이라고 그러지. 군에 가서 공부도 못하고 이럴 바에는 나라를 위해서 한 번 싸워보자.. 그런 생각을 했던 거죠. 뭐 그런 일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전쟁 같은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만약 국가가 위험을 당했을 때 과연 몇이나 우리 같은 이런 생각을 하겠나… 하는 게 궁금해요.”

아직 귀환하지 못한 한국 군 포로들의 조속한 송환을 이뤄낼 대책을 모색해보고, 귀환 한국군용사의 처우를 개선할 방안을 찾아보고자 열린 “귀환용사의 목소리로 6.25전쟁을 듣다' 토론회 현장에서,

VOA 뉴스 박은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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