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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조총련...'대북 송금 20분의 1로 감소'

  • 최원기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본부건물. (자료사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본부건물. (자료사진)

일본에서 북한을 대변하는 친북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조총련이 창설 60주년을 맞았습니다. 조총련은 이탈자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데다 최근에는 중앙본부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는 등 크게 위축된 상태입니다.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조총련은 지난 1일 결성 60주년을 맞아 도쿄에서 ‘재일동포대축전’을 열었습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허종만 조총련 의장은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총련의 전성기를 개척해 나가자”고 말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조총련 결성 60주년을 맞아 공개서한을 보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조선중앙방송]”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는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이 맡기고 가신 총련과 재일동포들을 끝까지 책임지고 보살필 것입니다.”

조총련 결성은 한반도가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된 지난 194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남한이나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에 눌러앉은 한인 60만 명 가운데 좌익 성향 인사들이 일본 공산당의 하부조직으로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 (민전)’을 결성했고, 이 조직이 10년 뒤인 1955년 조총련으로 재편됐습니다.

반면 일본 내 한인 우파들은 1946년 10월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 즉, 민단을 결성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북한 전문가로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민주주의진흥재단 (NED)방문연구원인 마키노 요시히로 씨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조총련이 일본 내 한인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우세했다고 말합니다.

[녹취: 마키노] "1970-80년대까지는 조총련이 민단보다 강하고, 회원이 40만에 달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조총련은 그동안 세 가지 활동을 통해 북한과 일본을 연결하는 파이프 역할을 해왔습니다.

우선 이른바 ‘북송사업’을 통해 재일 한인들을 대거 북한으로 보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1959년부터 1984년까지 9만3천 명의 재일 한인들이 북송선을 탔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7천여 명의 일본인 처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조총련은 북한 정권의 ‘자금줄’ 역할도 했습니다. 조총련은 1990년대 초까지 매년 상당한 자금을 ‘애국헌금’ 명목으로 북한에 보냈습니다. 평양에 있는 ‘안택상 거리’와 ‘김만유 병원’은 북한에 돈을 보낸 조총련 기업인들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조총련은 ‘일본 내 북한대사관’ 역할도 했습니다. 일본의 각종 정치, 경제 정보를 수집해 평양에 보내는 것은 물론이고 북-일 간 외교적 접촉이 있을 때 연락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일본 게이오대학의 북한 전문가인 이소자키 아츠히토 부교수입니다.

[녹취: 이소자키]”고이즈미 총리가 2004년에 두 번째로 북조선을 방문했을 때 조총련이 물밑에서 일본과 의사 소통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조총련이 위축되기 시작한 건 각종 악재가 터진 1990년대 말부터였습니다.

우선 북한이 1998년 8월 일본 열도 상공으로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한 데 이어 북-일 간에 납치 사건이 불거졌습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북한 만경봉 호의 입항을 금지시켰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조총련의 자금줄이었던 ‘조긴신용금고’가 파산했습니다. 조총련은 당시까지만 해도 이 금고를 통해 조성한 자금을 평양으로 송금하는 한편 계열기업들을 지원해왔습니다. 그런데 1997년에 조긴신용금고가 파산하자 조총련의 대북 송금도 줄어들었습니다.

북한경제 사정에 밝은 일본 ‘주간 동양경제’의 후쿠다 게이스케 부편집장입니다.

[녹취: 후쿠다]”제가 알기에는 2000년도에는 일본 돈으로 40-50억엔 정도 많은 돈이 북한으로 송금됐었는데, 2008년도에는 2억엔 정도로 급감했습니다.”

조총련은 2002년에 결정타를 맞았습니다. 그 해 9월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평양을 방문해 북-일 정상회담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본인을 납치했다고 시인한 겁니다.

그동안 납치 사실을 부인해온 조총련으로서는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고 후쿠다 씨는 말했습니다.

[녹취: 후쿠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2년에 고이즈미 수상에게 납치를 했다고 인정했을 때 뭐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조총련 친구들도 너무 놀라고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기억이 납니다.”

업친데 덥친격으로 2013년에는 조총련 중앙본부 건물이 경매로 넘어갔습니다. 앞서 조총련은 도쿄 중심지에 있는 본부 건물과 토지를 담보로 일본 금융기관으로부터 7억8천만 달러 상당의 대출을 받았는데 이를 갚지 못해 남의 손에 넘어간 겁니다.

다시 게이오대학의 이소자키 부교수입니다.

[녹취: 이소자키 교수]“조총련의 재정 상황이 어려웠다는 얘기입니다. 조총련 건물을 담보로 해서 많은 부채를 가졌다는 겁니다.”

조총련을 이탈하거나 등지는 한인들도 늘고 있습니다. 한 자료에 따르면 매년 1만 명 정도의 재일 한인이 일본으로 귀화하고 있습니다. 또 북한 국적을 버리고 남한 국적을 취득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재일 한인 중 북한을 고향으로 둔 1-2 세대는 갈수록 줄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일본의 북한 전문가인 마키노 연구원은 조총련의 장래가 어둡다고 말했습니다.

[녹취:마키노] "조총련이 이상한 주장을 하는 것은 재일교포들이 다 알고 있기 때문에..허종만이 자기 힘을 강조하고 있지만 미래는 어둡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당국에 따르면 현재 일본에 살면서 특별영주권을 갖고 있는 재일 한인은 43만4천 명이며, 이 가운데 조총련 지지자는 8만6천 명으로, 전체의 20%에 불과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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