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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들, 역사 왜곡으로 3.1운동 유관순 몰라"

  • 최원기

제 96주년 3·1절었던 지난 1일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정문 꿈새김판에 유관순 열사의 사진과 마지막 유언이 새겨져있다.

제 96주년 3·1절었던 지난 1일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정문 꿈새김판에 유관순 열사의 사진과 마지막 유언이 새겨져있다.

3.1절은 한민족이 일제의 식민통치에 항거해 전국적으로 만세를 부른 날입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당시 7살이었던 김일성이 3.1운동을 이끌었다고 믿고 있고, '유관순'도 잘 모른다고 합니다. 남북한의 서로 다른 3.1절을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한국 정부는 3.1절 96주년을 맞은 지난 1일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념행사를 가졌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녹취: 박근혜]”이제 일본이 용기 있고 진솔하게 역사적 진실을 인정하고 한국과 손잡고 미래 50년의 동반자로서 새로운 역사를 함께 써 나가기를 바랍니다.”

한국에서는 또 독립기념관이 있는 충청남도 천안과 전라북도 정읍, 서울 종로 탑골공원 등에서 일제히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녹취:KBS] “다같이, 만세, 만세, 만세”

그러나 이날 북한에서는 이렇다 할 행사나 기념식이 없었습니다. 탈북자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북한이 과거와 달리 별다른 기념행사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녹취:안찬일 ] "80년대까지만 해도 기념보고회도 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성명이나 발표하고 안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도 학교에서 3.1운동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북한의 인민학교 교과서는 김일성이 3.1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평양교원대학서 근무하다가 지난 2002년 한국으로 탈북한 이숙 씨의 말입니다.

[녹취: 이숙] ”일곱살짜리가 왜놈을 미워해서 어른들과 같이 만경대에서 만세를 부르며 평양시내까지 깃발을 흔들며 나왔다고 배웠어요.”

김일성 주석은 1912년 4월 15일 생으로 3.1 운동이 일어난 1919년에 7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7살짜리 어린이가 3.1운동을 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대다수 주민들은 당국의 반복된 선전에 ‘그러려니’하고 믿는다고 이숙 씨는 말했습니다.

[녹취: 이숙'] "나도 배울 때 그런가 보다 이렇게 생각했죠 뭐.”

북한 주민들은 또 ‘유관순’도 모릅니다. 당시 17살로 이화학당 여학생이었던 유관순은 서울과 천안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다 체포돼 서대문교도소에서 옥사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혁명역사’를 비롯한 교과서에는 유관순이 나오지 않습니다. 북한 강성산 전 총리의 사위로 1994년 한국으로 망명한 강명도 경민대 교수입니다.

[녹취: 강명도] “유관순은 저도 한국에 오기 전까지 전혀 몰랐어요. 유관순은 90년대 이후 북한 백과사전에 3.1운동에 참여한 여학생이라고만 나오지 전혀 나오는 게 없어요.”

독립선언서는 3.1운동 때 한국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임을 세계만방에 선언한 역사적인 문서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독립선언서와 민족대표 33인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또 김일성 일가가 모든 항일운동을 이끌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871년 신미양요의 발단이 된 제네럴 셔먼 호 사건은 김일성의 증조부인 김응우가 주도했으며, 김일성이 북한을 해방시켰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국 국민대학교의 정창현 교수는 북한이 1960년대 들어 독립운동사를 김일성 위주로 왜곡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정창현]“1958년 이른바 8월 종파 사건, 연안파들이 김일성에 반기를 들면서 숙청이 됩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독립운동사는 김일성과 동북항일연군 위주로 일색화되죠.”

북한은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김구의 행적도 김일성에게 유리하게 조작했습니다. 1948년 4월 남북 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김구가 상해임시정부 인장을 김일성에게 바치려했다는 것이 그 한 예입니다. 북한 선전매체입니다.

[녹취: KCNA] “위대한 수령님이 남북 연석회의에 참가했다가 서울로 떠나는 백범을 만날 주실 때였다. 장군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백범 김구는 정중히 말하고 나서, 묵직한 함을 내밀었다. 지난날 저는 해외로 하는 일 없이 돌아다니면서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지켜봤습니다. 적으나마 임시정부의 인장을 받아주십시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당시 나이가 72살인 백범 김구가 36살의 김일성에게 상해임시정부의 인장을 바치거나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안찬일 소장입니다.

[녹취: 안찬일] "저도 북한에서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그 후 서울에서 들은 얘기로는 인장을 가져갈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김일성의 정통성을 위해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인 인장을 넘겨줬다는 식으로 북한 당국이 조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19년 3월1일, 한민족은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해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을 벌였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 만세운동에는 한반도 전역에서 100만 명 이상이 참가했으며 사상자가 7천5백 명, 그리고 4만7천 명이 구속됐습니다.

VOA 뉴스 최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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