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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고아의 아버지' 딘 헤스 대령 별세


6·25 전쟁 당시 1천여 명의 전쟁고아를 구한 딘 헤스 미 공군 예비역 대령이 3일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7세. 사진은 전쟁고아들에게 선물을 주는 딘 헤스 대령.

6·25 전쟁 당시 1천여 명의 전쟁고아를 구한 딘 헤스 미 공군 예비역 대령이 3일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7세. 사진은 전쟁고아들에게 선물을 주는 딘 헤스 대령.

6.25 전쟁 당시 1천여 명의 전쟁고아를 구한 딘 헤스 미 공군 예비역 대령이 별세했습니다. 헤스 대령의 이야기는 책과 영화로 만들어져 미국에 널리 알려졌는데요. 조은정 기자가 헤스 대령의 삶을 소개합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딘 헤스 미 공군 예비역 대령이 3일 미국 오하이오 주의 자택에서 98살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헤스 대령은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1천여 명의 전쟁고아들을 피신시킨 사연을 담은 그의 수기와 영화는 미국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습니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안전지역으로 대피시키기 위한 당시 헤스 대령의 헌신적인 노력은 지난 1957년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 ‘전송가’에서 상세히 소개됐습니다.

[녹취: 영화 전송가 예고편] "You gotta get out of here…"

1950년 12월, 중공군이 서울로 물밀 듯 내려오자 헤스 대령과 미 제5공군사령부 소속 종군목사 러셀 블레이즈델 대령은 서울에서 돌보고 있던 고아 1천 명을 제주도로 옮길 계획을 세웠습니다.

[녹취: 영화 전송가 예고편] "I gotta get some transportation to take the kids.."

이들은 16 대의 미 공군 수송기를 동원해 고아들을 옮겼습니다. 당초 한국 공군이 인천 부두에서 탱크상륙용 선박에 고아들을 태워주기로 했지만, 예정일을 나흘이 지나도록 선박이 오지 않아 급하게 미 공군의 협조를 얻은 것입니다.

고아들은 약속 시간을 2시간이나 넘겨 김포공항에 도착했지만, 제5공군 소속 수송기들은 적군의 폭격을 받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기다려줬습니다.

헤스 대령은 전쟁 수기에서 “제일 마지막 차례의 어린이가 C-47 수송기 안으로 걸어 들어가 문이 닫히는 순간 내가 느꼈던 그 지극한 감사와 안도감은 내 평생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회고했습니다.

헤스 대령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제주도로 피신시킨 고아들을 계속 돌봤습니다. 미국에서 제작된 기록영화에는 헤스 대령이 1956년 부인과 함께 제주도의 고아들을 방문한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녹취: 미국 기록영화] "A warm welcome from 607 korean orphans from Jeju island greets Colonel Dean Hess…"

이 기록영화는 헤스 대령이 자비로 아이들을 위한 고아원을 세웠으며, 수기와 영화로부터 얻은 수입으로 계속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헤스 대령은 개인적으로 한국 고아 소녀 한 명을 입양하기도 했습니다.

기독교 목사였던 헤스 대령은 미 공군 전투조종사로 입대했습니다.

1950년 6월 중순 미 극동 공군사령부에 배속된 그는 한국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을 훈련시켰습니다. 또 1950년 7월부터 1년 간 250여 회나 직접 출격해 북한 군과 싸웠습니다.

한국 공군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헤스 대령이 “F-51 무스탕 전투기 조종교육을 통해 항공작전의 불모지였던 초창기 한국 공군을 비약적으로 성장시켰다”고 평가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헤스 대령이 조종했던 전투기에는 그의 좌우명인 ‘신념의 조인’ (By Faith, I Fly)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고, 이는 한국 공군 조종사의 기상을 상징하게 됐습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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