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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과기대 의과대 성공, 주민 의료 혜택 여부에 달려"


북한 평양의 한 병원 내부. 지난해 2월 신설한 유방암 연구센터 접수 창구에서 의사가 통화 중이다. (자료사진)
북한 평양의 한 병원 내부. 지난해 2월 신설한 유방암 연구센터 접수 창구에서 의사가 통화 중이다. (자료사진)
북한 최초의 국제대학인 평양과학기술대학이 의과대학을 설립한다는 소식 이미 전해 드렸습니다. 북한 의료계에 선진 의학 지식과 기술을 도입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지만, 주민들의 보건 환경 개선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북한에서 15년 넘게 의료봉사 활동을 해 온 한국계 미국인 의사 박문재 씨는 이달 초 평양에서 의학과학 토론회에 참석한 뒤 평양과학기술대학을 방문했습니다.

9월 개강을 목표로 착공된 의과대학 부지를 돌아보고, 학교 설립을 주도하는 미국과 영국 출신 의료인들의 설명을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박 씨는 ‘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의학 수준을 끌어올리려는 외부인들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무엇보다 의과대 설립과 동시에 북한 최초의 4년제 간호학과가 개설되는 것은 고무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문재 씨, 미국 심장내과 전문의] “2년제를 4년제로 했다는 게 간호사의 지위를 올려주게 되는 것이어서 좋은 일이죠.”

그러나 건물을 짓고 외부 의료인들을 영입하는 것 만으로 선진 의술을 북한에 효율적으로 이식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의과대학이 제 역할을 하려면 학과 기획과 교습 경험이 풍부한 전문인력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겁니다.

[녹취: 박문재 씨, 미국 심장내과 전문의] “의학 교육에 아카데믹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재미교포 내에서 초청하거나 북쪽에서 아카데믹 경험을 갖고 있는 교수님들이나 학장님들과 상의해서 세우는 것이 진실한 의과대학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제가 거길 방문해서도 몇 번 얘기 했습니다.”

따라서 현재 의대 건립과 개교를 준비 중인 외부 의료인들 외에 대학병원 운영과 의학 연구, 교육 전문가를 추가로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조언했습니다.

박 씨는 또 북한에 수준 높은 의대가 설립돼도 컴퓨터 시설과 인터넷 환경이 열악해 외부의 첨단정보와 학문적 성과를 따라잡는데 제약이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박문재 씨, 미국 심장내과 전문의] “미국의 의과대학 교육을 보면 인터넷이나 정보 기술을 굉장히 많이 이용해서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새로 생기는 의과대학에서도 그런 정보 기술을 응용하도록 노력하고 계획을 미리 세워야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북한에서 인공관절 수술을 집도하고 관련 의술을 전수한 한국계 미국인 정형외과 의사 오인동 씨는 평양과기대의 의과대학 개설 계획이 결실을 맺은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오인동 씨, 미국 심장내과 전문의] “의과대학이 좀 더 생긴다는 것은 인민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굉장히 바람직하지 않나, 아주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신설 의대가 임상과 더불어 기초의학을 심도 있게 연구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 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특히 남북한 간 의학용어 차이를 없애고 의료 수준 격차를 줄이는 등 통일 이후를 대비하는 작업도 병행해 줄 것을 주문했습니다.

[녹취: 오인동 씨, 미국 정형외과 전문의] “(용어가) 잘 통하질 않아요. 북에서는 러시아 말이라든지 동유럽 말을 의학용어로 많이 쓰더라구요, 앞으로 통일을 대비해서도 북에서는 의학용어를 통일하는 작업을 미리 해 두는 것도 굉장히 도움이 되겠다…”

하지만 북한 의료 실태를 직접 경험한 탈북자들은 아무리 수준 높은 의대를 개설한다고 해도 북한에서는 주민들이 피부에 와 닿는 의료 혜택을 누리기 힘들다고 지적합니다.

첨단 의학 지식을 갖춘 의사를 양성해도 의술을 적용할 기기나 약품이 턱없이 부족한 게 북한 의료계의 현실이라는 겁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자 출신 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원장입니다.

[녹취: 이애란 씨,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원장] “90년대 이후에는 약이 없었어요, 북한에. 의사가 아무리 유능해도 약이 없으면 못 고치는 거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잘 안 가요.”

이 원장은 북한의 보건과 진료 환경이 열악한 건 의사와 병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극도로 낮은 생활수준이 사회 전 분야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애란 씨,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원장] “저희 남편도 의사였지만 맨날 쌀을 사려면 산에 가서 나무를 해야 하는 거에요. 의사가 치료는 안 하고 맨날 산에 나무를 하러 가야 해요. 의사가 없어서 치료를 못하는 게 아니라 의사가 치료를 할 형편이 안 돼서 치료를 못하는 것이거든요.”

따라서 이들에게는 북한에 의사를 양성하는 기관이 하나 더 늘어난다는 사실이 크게 와 닿지 않습니다.

3년간의 기초의학 연구와 임상실습 과정이 북한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고스란히 활용될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이 뒷받침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VOA 뉴스 백성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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