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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북한...후반기 유화적 태도, 장성택 처형 충격


지난 4월 김일성 주석의 101번째 생일을 맞아 열린 기념공연을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오른쪽)과 장성택 부위원장이 나란히 관람하고 있다. 장 부위원장이 12월 실각 후 즉각 처형돼 충격을 줬다.

지난 4월 김일성 주석의 101번째 생일을 맞아 열린 기념공연을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오른쪽)과 장성택 부위원장이 나란히 관람하고 있다. 장 부위원장이 12월 실각 후 즉각 처형돼 충격을 줬다.

북한은 올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집권 2년차를 맞아 대내외적으로 강온 양면전략을 구사하며 체제 공고화에 진력했습니다. 2013년 마지막 날을 맞아 김영권 기자와 함께 올 한 해 북한 관련 주요 소식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진행자) 2013년의 북한,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요?

기자) 상반기는 핵실험 등 도발과 병진정책 발표 등으로 국제사회와 각을 세웠다면 후반기는 이런 강경노선이 다소 유화적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장성택 처형과 주요 간부들의 교체에서 볼 수 있듯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유일지배체제를 더욱 강화하는 해였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그럼 지난 1월로 돌아가서 어떤 굵직한 일들이 있었는지 짚어볼까요?

기자) 새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북한 지도자로는 19년만에 처음으로 육성 신년사를 해 관심을 끌었습니다. 특히 경제강국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 신세기 산업혁명이 국가적 목표라고 강조해 잠시 변화의 기대를 갖게 했죠. 하지만 전 달인 2012년 12월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이어 2월에 3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위기를 오히려 고조시켰습니다.

진행자) 국제사회가 이에 대해 매우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았습니까?

기자) 네, 유엔 안보리가 1월 22일 장거리 로켓에 대한 대북 제재 결의 2087호를 채택했고, 3월에는 3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결의 2094호를 채택했습니다. 특히 중국은 결의에 동참했을 뿐아니라 정부 부처들에 유엔의 대북 제재를 성실히 이행하라는 공문까지 하달해 북-중 관계가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유엔 인권이사회는 3월에 북한의 반인도 범죄 여부를 조사하는 조사위원회 설립을 의결해 북한 정부를 압박했습니다.

진행자) 남북관계도 3차 핵실험 이후 상당히 악화되지 않았습니까?

기자) 네, 북한은 3월 5일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했고 8일에는 남북 불가침 합의 전면 무효화, 판문점 남북 직통전화 단절을 한국에 통보했습니다. 이어 27일에는 남북 군 통신선 단절, 군 통신연락소 활동 중단 통보, 4월 2일에는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의 재가동을 선언했고 8일에는 개성공단 가동중단과 근로자 철수를 발표했습니다.

진행자) 북한이 병진노선을 선언한 때가 이때쯤이었죠?

기자) 그렇습니다. 북한은 3월 31일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열어 경제와 핵 무력 건설을 병행하는 병진노선을 채택했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국제사회는 병진노선이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전환을 촉구했습니다. 경제는 외부의 투자와 교역이 필수인데 핵이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병진노선을 ‘도박’이라며 성공 가능성을 일축했습니다.

진행자) 하지만 북한의 강경노선은 한동안 이어졌던 것 같은데요.

기자) 북한의 위협은 5월 7일에 서해를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선포하며 최고조에 올랐습니다. 미-한 연합군사훈련에 반발해 이런 위협을 가한 거죠. 같은 날 오바마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의 도발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자 미국과 중국이 북한을 압박했고 북한은 5월 22일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베이징에 특사로 파견해 시진핑 주석과 면담했습니다.

진행자) 이 때부터 북한의 태도가 바뀐 것 같은데요?

기자) 네, 북한은 이후 6월에 미국에 고위급 회담을 제안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도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를 통해 당국 간 회담을 제의했습니다. 특히 남북 연락채널이 석 달 만에 복원되면서 관계 개선에 기대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기대를 모았던 장관급 회담은 수석대표의 ‘격’과 ‘급’ 문제로 결국 무산됐습니다.

진행자) 경제 분야에서는 북한이 꽤 적극적이었던 것 같은데요?

기자) 그렇습니다. 남북 당국회담은 무산됐지만 북한이 개성공단 재개에는 큰 관심을 보이면서 7월 7일, 1차 실무회담에서 개성공단 재가동에 원칙적 합의가 이뤄집니다. 이후 9월16일에 개성공단 재가동에 합의했습니다. 한편 7월 25일에는 중국의 리위안차오 국가부주석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제1위원장을 면담하면서 3차 핵실험으로 벌어졌던 북-중 관계가 회복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진행자) 남북 이산가족 합의도 관심을 끌었었죠?

기자) 8월 23일 남북적십자 실무접촉이 이뤄져 추석에 이산가족 상봉을 하기로 양측이 합의했습니다. 9월15일에는 평양에서 열린 아세안컵 역도선수권대회에 북한이 처음으로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를 허용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를 다시 불러 일으켰었습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이산가족 상봉을 나흘 앞둔 9월 21일, 갑자기 상봉 행사를 연기한다고 발표해 이산가족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습니다.

진행자) 북한의 정책에 기복이 상당히 심했던 한 해가 아니었나 싶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그래서 외부에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장면을 인용해, 김정은 정권의 정책이 급히 오르락 내리락하는 롤러코스터 같았다고 평가했습니다.

진행자) 북한 지도부의 세대교체와 경제정책의 변화도 주목을 받았었죠?

기자) 네. 40-50대 젊은 간부들이 대거 등용됐고 경제정책에도 일부 변화가 감지됐습니다. 지난 해 4월부터 시작된 군과 노동당 권력 개편으로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황병서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과 마원춘 당 재정경리부 부부장 등 신진세력 구축이 거의 완료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진행자) 경제 분야는 어떤가요?

기자) 북한은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개혁파로 분류되는 박봉주를 내각총리로 임명하고 경제개발구 창설을 추진했습니다. 이후 생산 단위인 ‘분조’를 크게 줄이고 남은 생산물을 단위별로 자유롭게 처분하게 했습니다. 또 독립채산제 등을 도입해 경쟁을 통한 경제 변화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지난 5월 경제개발구법을 지정한 뒤 11월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13개 경제개발구와 신의주 경제특구를 설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관광산업 중시, 보여주기식 평양의 외형 재단장, 마식령 스키장 건설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진행자) 북 핵 협상도 관심을 끌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죠

기자) 네, 북한은 지난 9월18일 전제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이틀 뒤인 20일 국제원자력기구 (IAEA)가 북 핵 활동의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합니다. 이후 10월28일 글린 데이비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 특별대표가 회동해 관심을 끌었고 특히 우다웨이 대표가 지난 달 4일 평양을 방문해 진전이 기대됐지만 성과는 없었습니다. 미국과 한국, 일본은 북한의 진정성있는 태도 변화와 구체적인 조치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웠지만 북한은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주장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겁니다.

진행자) 이렇게 올 한 해가 끝나는가 했는데 이 달에 큰 뉴스가 나왔죠?

기자) 네, 지난 3일 한국 국정원이 장성택 실각설과 측근 2 명의 처형설을 공개하면서 관심을 끌었습니다. 북한은 9일 장성택 숙청을 공식 발표하고 12일 처형을 보도하는 등 이를 속전속결로 처리해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정보당국은 장성택 숙성을 북한의 발표와 달리 이권 다툼에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30일 장성택 주변인사들에 대한 숙청이 지속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김영권 기자와 함께 올해 북한 관련 주요 뉴스들을 되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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