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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이은 숙청사'…북한 지도자의 통치술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8일 평양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는 이날 회의에서 반당·반혁명 종파주의로 실각한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현장에서 끌려나간 장면을 보도했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8일 평양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는 이날 회의에서 반당·반혁명 종파주의로 실각한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현장에서 끌려나간 장면을 보도했다.
북한 정권은 그동안 유일영도체제가 불안해졌을 때나 새 지도자의 등장 초기에 숙청이라는 전근대적이고 잔인한 통치술을 구사하곤 했습니다.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사건을 계기로 북한 권부에서 벌어졌던 숙청의 역사를 되짚어 봤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1956년 김일성 북한 주석은 자신의 일인지배에 도전한 ‘연안파’와 ‘소련파’를 당의 영도적 역할을 부정하고 종파 활동을 했다며 대대적으로 숙청했습니다.

북한에서 벌어진 권력투쟁 사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이른바 ‘8월 종파사건’입니다.

김 주석은 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 권부 내의 친 중국파와 친 소련파를 모두 제거하고 일인지배 체제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이어 1967년에는 김 주석이 함께 항일 무장투쟁을 벌인 빨치산 세력인 ‘갑산파’를, 그리고 69년엔 군부의 일부 세력을 제거함으로써 일인지배 체제를 확고하게 만들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김 주석의 후계자로 지명되고 난 뒤 숙청을 전가의 보도로 활용했습니다.

74년 자신과 권력 갈등을 빚었던 계모 김성애와 그 측근들을 모두 제거하고 배다른 동생 김평일을 외국으로 쫓아냈습니다.

특히 90년대 말 ‘고난의 행군’ 시절 극도로 불안해진 민심을 단속하기 위해 사상 검열을 명분으로 심화조를 만들어 고위 간부와 가족들을 솎아 내는 대대적인 숙청 작업을 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관희 노동당 농업담당 비서를 간첩 혐의로 제거했습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뒤 2년 만에 고모부이자 집권 과정에서 최대 후견인이었던 장성택 부위원장을 반당 반혁명 종파 행위 혐의로 정치생명을 끊었습니다.

한국의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 씨 세습정권은 유일영도체제를 지탱하기 위해 숙청과 같은 공포정치를 반복적으로 활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고유환 동국대 교수] “김일성 시대부터 위기 때 자기 권력을 강화하고 반대파를 숙청하는 명분으로 반당 반혁명 종파 문제를 제기해 왔는데요, 늘 위기가 오거나 지도체제를 형성하는 초기단계에서 숙청의 문제가 제기되곤 했었죠.”

북한 전문가들은 숙청이 독재정권들이 반대파를 척결하는 데 흔히 쓰는 방법이라며 3대에 걸쳐 이런 전근대적인 통치술을 활용한 예는 현대 정치사에서 찾아 볼 수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박형중 박사입니다.

[녹취: 박형중 통일연구원 박사] “민주정치 하에선 선거라는 게 있어서 정치인들의 물갈이가 되는데 공산정권에선 선거가 기능하지 않고 지도부가 재편되는 데 있어서 이와 같이 물리적 제거 즉, 숙청의 방법이 사용됩니다.”

통일연구원 최진욱 박사는 장 부위원장에게 여자와 마약 문제까지 혐의를 씌운 것은 김 제1위원장의 유일 영도력이 아직 불안정하다는 반증일 수 있다며, 할아버지나 아버지 시대와는 달리 숙청의 후유증이 세력간 권력투쟁으로 번질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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