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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 타계...지구촌 애도 물결


지난 2010년 7월 월드컵 결승전 경기장을 찾은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관중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지난 2010년 7월 월드컵 결승전 경기장을 찾은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관중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남아공 민주화의 상징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타계 소식에, 세계 곳곳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근삼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만델라 전 대통령 타계 소식에 전세계가 함께 슬퍼하고 있군요?

기자) 만델라 전 대통령이 5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자택에서 95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남아공 국민들은 큰 슬픔에 빠졌고, 세계 곳곳에서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이 날 TV로 중계된 긴급 발표에서 만델라 전 대통령의 타계 소식을 전했는데요. 남아공은 위대한 아들을 잃었고, 남아공 국민들은 아버지를 떠나보냈다며 슬퍼했습니다. 주마 대통령은 또, 만델라 전 대통령이 자유를 향한 쉼 없는 투쟁으로 세계의 존경을 얻었고, 인간애와 인도주의 정신을 실천하며 세계의 사랑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이 곳 워싱턴의 미국 언론들도 만델라 전 대통령 타계 소식을 가장 중요한 뉴스로 다루고 있더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각 국 언론들은 '위대한 거인이 잠들었다', '큰 별이 우리 곁을 떠났다'며 만델라 전 대통령의 타계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살았던 그의 삶이 세계인들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다고 할 수 있을겁니다. 바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5일 백악관에서 애도의 뜻을 밝혔는데요. 자신도 만델라 전 대통령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수 많은 사람 중 한 명이라면서, 만델라 전 대통령은 사람들의 곁을 떠났지만 시대의 인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만델라 전 대통령이 삶에 대해서도 좀 소개해주시죠.

기자) 만델라 전 대통령은 남아공 인종차별 철폐에 앞장선 인권의 수호자이자 민주화의 상징으로 존경받았습니다. 1918년에 남아공 한 부족장의 아들로 태어났고, 법학대학에 재학 중이던 1944년, 이십대의 나이에 본격적으로 남아공 인종차별철폐를 위한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아프리카민족회의라는 정당의 부의장이던 1962년 국가 반역죄 혐의로 체포됐고, 2년 뒤 종신형을 받아 수감돼 27년 동안이나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석방 직후 자신은 지도자가 아니라 국민의 가장 미천한 종으로 인권을 위해 남은 인생을 바칠 준비가 돼있다고 말한 연설은 당시 남아공 국민들에게 많은 감동을 줬습니다.

진행자) 노벨평화상도 수상했죠?

기자) 네. 만델라 전 대통령은 1993년 인종차별 철폐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고요. 1994년에는 처음으로 모든 인종이 참여한 대통령 선거에서, 첫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됐습니다. 당시 만델라 전 대통령이 취임하자, 흑인을 탄압했던 백인 기득권 세력은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만델라 전 대통령은 용서와 화해의 정신을 강조하면서, 폭력과 분열에서 화합을 일궈냈습니다. 당시 만델라 대통령은 그들이 나에게 한 일은 잊을 수 없지만, 난 그들을 용서한다고 말했었습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재직 시절 백인들만의 스포츠로 여겨졌던 럭비 시합에, 백인 우월주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럭비 경기복을 입고 참석했는데요. 남아공 흑백화합의 가장 극적인 순간으로 아직도 기억되고 있습니다.

진행자)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만델라 전 대통령은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는 말을 했는데요. 만델라 전 대통령이 대통령 퇴임 후에도 인도주의 활동을 계속했죠?

기자) 네. 만델라 전 대통령은 헌법상 재임이 가능했지만, 단임으로 임기를 끝내면서 평화적인 정권 이양의 모범을 남겼고요. 또 퇴임 후에도 후천성면역결핍증 퇴치와 빈곤 어린이 교육을 위한 사업을 꾸준히 펼쳤습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 2010년 남아공에서 열린 월드컵 행사가 마지막이었는데요. 이후 고령으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입원과 퇴원을 여러 차례 반복하다가 어제 숨을 거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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