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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서 숨진 국군포로 유해, 탈북한 딸이 한국 송환


6·25 전쟁 때 국군포로로 끌려가 지난 1984년 북한에서 숨진 손동식씨로 추정되는 유골이 5일 서울국립현충원 소재 영현봉안관으로 옮겨지고 있다.

6·25 전쟁 때 국군포로로 끌려가 지난 1984년 북한에서 숨진 손동식씨로 추정되는 유골이 5일 서울국립현충원 소재 영현봉안관으로 옮겨지고 있다.

한국 전쟁 때 북한으로 끌려 간 국군 포로로 추정되는 고 손동식씨의 유해가 한국으로 송환됐습니다. 탈북한 뒤 한국에 정착한 딸이 민간 단체의 도움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해낸 일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국군포로 고 손동식씨로 추정되는 유해가 중국을 거쳐 지난 5일 인천으로 들어왔습니다.

유골함은 태극기로 감싸져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내 국방부 유해발굴 감식단으로 옮겨졌습니다. 이어 진혼곡이 울리는 가운데 국방부와 현충원 관계자들의 거수 경례를 받으며 영현 봉환관에 안치됐습니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의 유전자 검사를 통해 최종 확인하는 절차가 남아 있지만 국방부는 국군포로에 준하는 예우로 손 씨의 유해를 맞았습니다.

북한에서 사망한 국군포로의 유해 영접식이 현충원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유해가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손 씨의 딸인 손명화씨의 눈물 겨운 노력 때문이었습니다.

손 씨가 북한에서 낳은 명화씨는 지난 2005년 탈북한 뒤 북한 땅에 묻힌 아버지의 유골을 한국으로 가져오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지난달 북한에 남은 친인척들이 무덤에서 손 씨의 유해를 수습해 배낭에 넣어 북-중 접경지역에서 중국인 브로커에게 전달했습니다.

명화씨는 국군포로 송환 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 내 사단법인 ‘물망초’의 협조를 얻어 아버지의 유해를 한국으로 가져왔습니다.

명화씨가 이처럼 유해 송환에 온 정성을 쏟은 것은 포로라는 이유로 평생 탄광에서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아버지가 지난 1984년 폐암으로 사망하기 직전 경북 김해 고향 땅에 묻어달라고 한 한 맺힌 유언 때문이었습니다.

[녹취: 국군포로 손동식씨 딸 손명화씨] “아버지가 네가 만약에 한국에 갈 때면 내 시체를 꼭 메고 가서 고향에 묻어라, 내가 여기서 부모도 보지 못하고 죽는 게 원통한 데 죽어서라도 고향에 묻어주면 좋지 않겠느냐고 하시더라고요”

손 씨가 포로로 잡힌 것은 한국 전쟁이 끝나기 불과 석 달 전의 일이었습니다. 육군 9사단 소속 전투병으로 계급은 이등중사였습니다. 손 씨가 유해로나마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60년만의 일입니다.

한국 군 당국에 따르면 화장하거나 온전한 유골로 한국에 돌아온 국군포로는 이번까지 포함해 모두 여섯 명입니다.

박선영 물망초 이사장은 북한에 끌려 간 국군 포로의 대부분이 사망했지만 고향 땅에 묻히지 못한 이들의 한을 풀어 줘야 한다며 이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호소했습니다.

[녹취: 박선영 사단법인 물망초 이사장] “국군 포로 문제는 남북 문제가 아니라 제네바 협정 위반이라는 국제법 문제이고 따라서 이제라도 전 세계가 함께 국군 포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돌아가신 분들의 유해를 고인의 유언에 따라 또는 가족의 원에 따라서 송환해 올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합니다”

국립서울현충원 측은 손 씨는 1998년 행방불명자로 확정돼 그의 위패가 국립대전현충원에 이미 모셔져 있다며 유골이 손 씨의 것으로 확인되면 대전 현충원에 안치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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