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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탈북 국군포로 유영복 다큐 보도

  • 이성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탈북 국군포로 유영복 씨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도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탈북 국군포로 유영복 씨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도했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가 북한에서 47년을 강제노역하다 탈출한 6.25 전쟁 국군포로의 이야기를 영상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보도했습니다. 이성은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 신문이 제작한 다큐멘터리는 아담하지만 아늑해 보이는 한국의 아파트에서 올해 83살인 유영복 씨가 식사 준비를 하는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녹취: WSJ 다큐멘터리] “학교에서 북한을 지지하는…”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남한에서 살던 유 씨는 한국전쟁이 터지자 영문도 모른 채 북한 의용군으로 강제징집 됐습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북한 군에서 싸워야 했던 유 씨는 북한 군이 후퇴하는 틈을 타 탈출해 국군을 만납니다.

하지만 북한 군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포로수용소로 가게 됐고, 1952년 6월 의용군 출신 포로를 대상으로 한 심사에서 남쪽을 선택해 자유의 몸이 됐습니다.

유 씨는 곧바로 국군에 지원했습니다. 조국을 두고 북한 군에 들어갔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습니다.

[녹취: WSJ 다큐멘터리] “I was assigned…”

유 씨는 1953년 6월 10일 강원도 금화군 부근 최전방에서 치열한 전투 끝에 중공군에 포로로 잡혔습니다.

이후 한 달 보름 정도가 지난 7월 27일, 남북한이 정전협정을 체결했다는 소식에 집으로 돌아간다는 희망이 생겼지만, 기대는 잠시 뿐이었다고 유 씨는 회상했습니다.

유 씨는 다른 국군포로 1천여 명과 함께 ‘들어갈 수는 있어도 나올 수는 없다’는 악명 높은 함경남도 검덕 광산으로 보내졌습니다.

[녹취: WSJ 다큐멘터리] “검덕 광산이라고 이름 났는데요…”

지하 1천 미터가 넘는 막장에서 삼엄한 감시 속에 온종일 해야 하는 중노동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역이었습니다.

유 씨는 무엇보다 함께 붙잡혀 온 동료들이 하나 둘씩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일이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47년. 70살 할아버지가 된 유 씨에게 지난 2000년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다는 소식은 커다란 희망의 빛줄기였습니다.

[녹취: WSJ 다큐멘터리] “김대중 대통령이 온다는 소식에 정말 많이 기다렸어요…”

그러나 이웃집 텔레비전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흘린 기쁨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유 씨는 큰 실망에 빠졌습니다. 정상회담 뒤 발표된 6·15 남북 공동선언에 국군포로 얘기가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달 뒤, 유 씨는 스스로의 힘으로 조국 땅을 밟기로 결심했습니다.

[녹취: WSJ 다큐멘터리] “중국의 보따리 장사를 하는 여자를 따라서…”

마침내 지난 2000년 8월, 47년여만에 그리던 조국땅을 밟았습니다.

굶주림과 억압에 시달려 온 유 씨는 한국이 그저 지상낙원 같았다며 첫 느낌을 회상했습니다.

[녹취: WSJ 다큐멘터리] “한국에 와서 정말 지상낙원이 여기 있구나…”

조국으로 돌아온 기쁨 만큼이나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과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은 평생 가져갈 마음의 짐이라고 유 씨는 털어놨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가족들에게, 남북이 통일되면 꼭 만날 것이란 기대를 갖고 굳세게 살아주기를 부탁한다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유 씨는 남은 여생 자신의 할 일은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들의 비참한 현실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WSJ 다큐멘터리] “오라는 데 있으면 가고…”

유 씨는 또 한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 신문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북한이 송환하지 않은 국군포로 2만4천 명 대부분이 북한의 광산에 끌려갔고, 현재 수 백 명이 북한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습니다.

VOA 뉴스 이성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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