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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버린 천재 작곡가' 정추 별세


한국에서 태어나 월북했다가 다시 소련으로 망명해, 카자흐스탄 음악계의 거장이 된 정추 선생이 13일 향년 90살을 일기로 별세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월북했다가 다시 소련으로 망명해, 카자흐스탄 음악계의 거장이 된 정추 선생이 13일 향년 90살을 일기로 별세했다.

한반도 현대사와 궤적을 함께 한 작곡가 정추 선생이 별세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월북해 평양음대 교수로 재직하고, 모스크바 유학 중 소련에 망명한 정추 선생은 카자흐스탄 음악계의 거장으로 떠올랐습니다. 조은정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일제 식민지 시대와 한반도 분단의 아픔을 온 몸으로 겪은 천재 작곡가 정추 선생이 13일 90살을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정추 선생은 불의를 참지 않는 성격과 시대적 현실이 맞물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일제 치하인 1923년 한국 광주에서 태어난 정추 선생은 애국심이 강한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조선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일본인 교사와 충돌해 퇴학 당했습니다. 생전 한국의 `KBS'와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정추 선생 녹취] “어떻게 얻어 맞았는지 일어나지 못하고 겨우 집에 돌아갔는데 저를 퇴학시켜 버렸어요."

정추 선생은 사회주의자였던 형의 영향을 받아 해방 직후인 1946년 월북했습니다. 형인 정준채 씨는 북한에서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조선프롤레타리아영화인동맹 초대 서기장을 지냈습니다.

정추 선생도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아 평양음대 교수로 근무하던 중 1953년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북한에서 유명한 음악가 김원균은 정추 선생과 차이코프스키 음대를 함께 다닌 친구입니다.

정추 선생은 러시아 음악의 대가 차이코프스키 음악 계보를 잇는 4세대 작곡가로 불립니다.

그의 졸업작품인 교향곡 ‘조국’은 차이코프스키 음대 역사상 처음으로 만점을 받았고, 소련 당국이 인류 역사상 최초의 우주비행을 축하하는 자리에서는 그의 작품이 연주됐습니다.

하지만 정추 선생은 도망자 신세가 됐습니다. 1957년 소련에 유학 중이던 북한 학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김일성 독재를 비판하자 그에 대한 체포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모스크바의 북한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주도로 벌어진 ‘스탈린 격하운동’의 영향으로 김일성 우상화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정추 선생은 흐루시초프 서기장에게 직접 편지를 써 망명을 신청했고, 북한으로의 강제송환은 면한 대신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로 추방됐습니다. 소련은 추방 뒤 17년이 지난 1975년에야 정추 선생에게 공민증을 발급했습니다.

정추 선생은 카자흐스탄에서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추방된 고려인들을 찾아다니며 구전 가요를 1천 곡 넘게 채보했습니다.

또 고려인들의 강제이주를 담은 교향곡 ‘1937년 9월 11일 스탈린’을 만드는 등 300여 편의 관현악곡과 실내악곡, 칸타타 등을 작곡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음악 교과서에는 그의 작품 60여 곡이 실렸고, 정추 선생은 1988년 카자흐스탄 정부로부터 ‘공화국 공훈 문화일꾼’ 칭호를 받았습니다.

정추 선생은 작곡할 때 한국의 전통 음계에 바탕을 둔 곡조를 사용했으며, 모국애와 민요에 대한 감수성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정추 선생은 생전에 통일 조국을 염원하며 마지막으로 만든 ‘내 조국’이란 곡이 통일 조국의 애국가가 되길 바랬습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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