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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북한, 협상 합의·파기 반복하며 핵 능력 강화"


2일 북한이 영변의 5MW급 흑연감속로를 정비해 재가동할 것이라는 내용의 대변인 발표를 보도하는 조선중앙TV.

2일 북한이 영변의 5MW급 흑연감속로를 정비해 재가동할 것이라는 내용의 대변인 발표를 보도하는 조선중앙TV.

북한이 6자회담 합의로 중단했던 영변 원자로까지 다시 가동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그동안 북한 비핵화에 기울였던 국제사회의 노력이 헛수고가 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합의와 파기를 반복해 온 북한의 협상 패턴은 결국 핵 무장을 달성하려는 연막전술이었다는 지적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 핵 위기가 처음 닥친 것은 지난 1993년 3월 국제원자력기구, IAEA가 영변에 대한 특별사찰을 요구하자 북한이 이에 맞서 핵확산금지조약, NPT 탈퇴를 선언하면서였습니다.

위기는 이듬해인 1994년 미국과 북한이 극적으로 제네바 합의를 맺으면서 일단 봉합됐습니다.

합의의 골자는 미국이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주고 대신 북한은 영변 핵 시설을 동결한다는 약속이었습니다.

하지만 2002년 10월 북한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당시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방식의 핵 개발을 시인했다고 전하면서 한반도 정세는 다시 얼어붙었습니다.

북한은 같은 해 12월 핵 동결을 해제한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습니다. 2차 핵 위기였습니다.

국제사회는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참여하는 6자회담이라는 새 협상 틀을 만들어 위기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2005년 2월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으로 굴곡을 겪기도 했지만 6자회담은 그 해 9월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냈습니다.

미국 등 6자회담 5개 참가국들이 북한에 에너지 등을 제공하는 대신 북한은 핵무기를 파기하고 NPT체제에 복귀한다는 게 골자였습니다.

그러나 방코델타아시아의 북한 자금 동결 사태로 북 핵 협상은 다시 교착상태에 빠졌습니다. 북한은 2006년 7월 1차 핵실험을 강행해 한반도는 또 다시 위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위기는 또 다시 관련국들을 협상장으로 이끌었습니다. 6자회담이 같은 해 12월 재개됐고 이듬해인 2007년 9.19 공동성명의 초기 이행 조치를 담은 2.13 합의가 만들어졌습니다.

북한은 영변 원자로를 폐쇄하고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기도 하면서 핵 포기 의지를 보이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핵 검증 문제를 둘러싼 이견으로 협상은 다시 기나긴 교착상태에 빠졌습니다. 북한은 2009년 4월엔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이어 5월엔 2차 핵실험을 강행했습니다.

한국 국책연구기관인 국방연구원의 이호령 박사는 지난 20년간의 북 핵 협상은 사실상 북한이 핵 능력을 키우는 데 필요한 시간벌기에 활용된 셈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이호령 국방연구원 박사] “북한이 핵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겉으로 보기엔 합의하고 파기하는 이런 반복된 과정을 취해 왔지만 실질적인 측면에선 핵 국가로 나가기 위한 준비를 꾸준히 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3차 핵실험 이후 이번에 영변의 흑연 감속로까지 다시 가동하겠다고 한 북한의 위협은 미국에 핵 군축 협상을 압박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정영태 박사입니다.

[녹취: 정영태 통일연구원 박사] “핵 폭탄을 만약 북한이 3기 정도 갖고 있다고 가정하면 이제 3기에서 10기, 10기에서 15기 이런 식으로 5 메가와트 원자로를 통해서 플루토늄을 생산해서 그렇게 나가겠다는 뜻이고 이제는 바로 핵 군축 협상으로 바꾸겠다 그런 뜻도 갖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6자회담으로 돌아갈 마지막 끈 마저 끊어버리려는 게 아니냐며, 6자회담 재개가 더욱 힘들어졌다고 우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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