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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지진 2주년 맞아 추도식...아웅산 수치, 버마 야당 의장에 재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세계의 현안들을 정리해 드리는 지구촌 오늘 입니다. 먼저 이 시간 주요 뉴스입니다. 일본 대지진 사태가 2주년을 맞았습니다. 버마 민주화의 상징 아웅산 수치 여사가 10일 야당 의장에 재선됐습니다. 아프리카 케냐 대통령 선거에서 케냐타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VOA 이연철 기자와 함께 하겠습니다.

진행자) 오늘은 많은 희생자를 낸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2년이 되는 날인데요, 먼저 일본 내 분위기부터 살펴볼까요?

기자)네, 일본에서는 오늘 (11일) 동일본 대지진 2주년을 맞아 추모식이 열렸습니다. 지난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부를 강타한 지진과 쓰나미로 약 1만 9천명이 목숨을 잃었는데요. 일본 국민들은 2년 전 지진이 일어났던 오후 2시 46분에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의 표시로 일제히 묵념을 했습니다. 이어 아키히토 일왕 부부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추도사를 했습니다. 한편 반핵 시위도 전국 곳곳에서 열렸습니다.

진행자) 대지진이 발생한 지 2년이나 지났지만 아직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는 않았다고 봐야겠죠?

기자) 그렇습니다. 일본 정부 통계에 따르면, 전국에 피난 중인 사람이 31만 5천여 명으로, 1년 전에 비해 3만명 정도 줄어드는데 그쳤고, 재해지역의 잔해물 제거 작업은 46% 정도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사고가 난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여전히 방사성 물질이 새나오고 있습니다.

진행자) 대지진 이후 그 동안 많은 여진이 발생했다고요?

기자) 네, 진도 1.0 이상의 여진이 지난 해 3월11일까지 1년 간 8천회, 그 후 올해까지 1년 간은 1천6백회나 발생했습니다.

진행자) 대지진 이후 일본에서는 핵발전소 가동이 전면 중단됐고, 원자력 발전에 대한 반대가 강했었는데요, 이제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고요?

기자) 원자력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차 잦아드는 분위기로 알려지고 있는데요, 지난 9일 타이완에서 열린 반원전 시위에는 약 20만명이 참가한 반면, 같은날 도쿄 메이지공원에서 열린 반원전 집회에 1만5천명 정도가 참석하는데 그쳤습니다. 일본 주요 언론들도 반원전 집회 소식 보다는 봄철 꽃가루와 중국의 황사 등을 더 크게 보도했습니다.

진행자) 엄청난 피해를 입은 일본에서 이처럼 반원전 운동이
힘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기자) 일본 국민들의 관심이 ‘강한 일본’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전 재가동과 평화헌법 개정을 내세운 아베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70%대로 고공 행진을 계속하고 있고요, 2020년 하계올림픽 유치에 대한 도쿄 시민들의 지지율도 지난 해 47%에서 최근에는 70%로 크게 올랐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베 총리는 곧 원전 재가동을 천명할 계획입니다. 이전 민주당 정부는 2030년대에 탈원전을 선언했지만, 아베 정부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원전 재가동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진행자) 이런 가운데,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처음으로 원전 건설 공사가 재개됐다고요?

기자) 네, 아오모리 현의 오마 원전 건설 공사인데요, 워싱턴 포스트 신문에 따르면, 6백명의 건설 근로자들과 기술자들이 새로운 핵 발전소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신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의 거의 모든 원전이 가동을 중단했었다며, 하지만 현재 원자로 2기가 다시 가동을 시작했고, 2008년에 시작했다가 중단됐던 오마 핵 발전소 공사가 재개된 것은 원자력 발전을 둘러싼 교착상태가 해소되기 시작했다는 분명한 신호라고 풀이했습니다.

진행자) 지구촌 오늘 함께하고 계십니다. 다음 소식은요?

기자) 버마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가 최대 야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 NLD 의장으로 재선됐습니다. NLD는 10일 양곤에서 1988년 창당 이래 처음 열린 전당대회를 마무리하면서 수치 여사를 당의장으로 다시 선출한 것입니다.

이번 대회는 제1 야당이 처음으로 전당대회를 연 것이어서 버마 민주주의의 새로운 시험대로 간주되는 등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는데요, 실제로 NLD는 당내외의 급격한 상황 변화 속에서 세대간 갈등과 중앙과 지방 조직 간 갈등 등을 겪고 있으며, 이번 대회에서도 그 같은 마찰이 일부 노출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진행자) 수치 여사가 연설을 통해 단결과 단합을 강조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수치 여사는 지도부를 선출하는데 개인적 불만과 친소관계를 배제하고 정책을 우선해 달라고 호소하면서, 과거에 NLD를 강하게 만들었던 동지애를 회복하자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수치 여사는 NLD가 중앙집권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인정하면서, 상황이 바뀐만큼 당의 분권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진행자) 이런 가운데,수치 여사가 민주화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요?

기자) 네, 미국 언론들이 그 같이 지적하고 있는데요, 뉴욕타임스 신문은 버마 국민들은 수치 여사가 정치인으로서 인권 보호에 앞장서는 지도자가 되기를 기대했지만, 수치 여사는 대통령이 되기 위한 길을 만들려고 애를 쓰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수치여사에 대한 대표적인 비난은 소수민족 탄압에 침묵하는 것이라면서, 버마 군부는 자치독립을 요구하는 북부 카친 족 등에 유혈 진압을 했지만, 수치 여사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진행자) 그렇군요

기자) 또한 경제전문지인 월스트리트 저널은 옛날의 수치 여사라면 군부를 비판했겠지만 지금은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고요, 블룸버그 통신은 버마 야당의 고위 인사를 인용해 수치 여사가 군부에 호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진행자) 수치 여사가 군부와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궁금한데요?

기자) 수치 여사가 대통령이 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미국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현행 버마 헌법에 따르면 외국 국적의 자식이 있는 사람은 대통령과 부통령이 될 수 없는데요, 영국인과 결혼한 수치 여사의 두 아들은 영국 국적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수치 여사가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이 되는데 걸림돌을 제거하려고 하는데, 군부의 협조 없이는 헌법 개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군부에 호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행자) 지구촌 오늘, 마지막으로 아프리카로 가 보겠습니다. 아프리카 케냐 대통령 선거에서 케냐타 부총리가 당선됐다고요?

기자) 네, 케냐 대선에서 우후루 케냐타 부총리가 경쟁 후보인 라일라 오딩가 총리를 물리치고 제4대 케냐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케냐타 부총리는 50.07% 득표율로 43.31%를 얻는데 그친 오딩가 후보를 물리쳤는데요, 불과 8천4백표 차이로 과반을 가까스로 넘겨 2차 결선투표를 피했습니다.

진행자) 케냐다 당선자는 어떤 인물인가요?

기자) 1963년 영국 식민지 통치를 종식한 독립 투쟁을 이끈 조오모 케냐타 케냐 초대 대통령의 아들로, 이번 당선으로 케냐 첫 부자 대통령에 오른 인물입니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30대 중반부터 정치권에 입문해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패배했습니다. 5년 후인 2007년 선거에서는 같은 키쿠유족 출신인 키바키 진영에 합류해 그의 재선을 도왔고요, 2008년 키바키 대통령-오딩가 총리 거국내각이 출범하면서 부총리 겸 재무장관으로 임명됐습니다.

진행자) 이런 가운데 케냐타 당선인은 국제형사재판소 ICC에 기소돼 있죠?

기자) 네, ICC는 2007-2008 케냐 폭력 사태를 조사하면서 케냐타가 연루된 혐의를 잡고 그를 기소했는데요, 따라서 서방 국가들은 ICC 재판 등으로 케냐 정국에 혼란이 빚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케냐타 당선인은 이를 의식한 듯 당선 소감에서 자신과 내각이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하겠다면서, 국제사회도 케냐의 자주권과 민주주의를 향한 의지를 존경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습니다.

진행자) 야당은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요?

기자) 네,케냐타 당선자는 지난 4일 투표 이후 줄곧 우세를 유지했지만 전날 오전까지도 득표율이 50%를 밑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결선 투표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됐었는데요, 오딩가 후보는 선관위 발표 직후, 선거 과정에서 수 많은 부정이 있었다며,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지난 2007년 폭력사태를 의식해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호소했는데요, 당시 부족 간 충돌로 무려 1천2백여 명이 숨지고 5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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