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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북한서 영화 만든 미주한인 배병준 씨 "구호사업으로 신뢰 쌓아 영화 촬영"


북한에서 한국계 미국인이 제작한 영화 '산너머 마을' 중 한 장면. 주연 여배우 김경님의 모습이다.

북한에서 한국계 미국인이 제작한 영화 '산너머 마을' 중 한 장면. 주연 여배우 김경님의 모습이다.

북한에서 촬영된 영화가 오늘 (7일)부터 미국에서 상영됩니다. 6.25 전쟁을 배경으로 북한 간호사와 남한 병사의 사랑을 그린 영화 ‘산 너머 마을’은 배우와 감독은 물론 모든 제작 과정이 북한인들에 의해 진행됐는데요. 이 영화의 기획과 제작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실향민이 맡아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영화 ‘산너머 마을’의 제작자 배병준 TWP대표를 백성원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한국계 미국인이 북한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언뜻 상상이 잘 안되는데요, 전부 이게 북한에서 촬영된 거죠?

영화 '산너머 마을'제작자 배병준 대표

영화 '산너머 마을'제작자 배병준 대표

배병준 대표) 맞습니다

기자) 북한 어디어디에서 찍으셨습니까?

배병준 대표) 여러 곳에서 찍었어요. 주로 찍은 데는 평양에서 4시간 정도 가면 구월산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구월산에서 많이 찍고, 평양에서 찍고, 신의주에서 찍고, 개성에서 찍고. 뭐 여러 곳에서 찍었습니다.

기자) 그렇군요. 배 대표께서 영화 제작 과정에서 일인 다역을 하셨던데, 소개를 좀 해주시죠.

배병준 대표) 저는 시나리오를 쓰고요. 프로듀스 했지만 프로덕션 크루 (제작 인력), 액터(배우)는 전부 이북 사람입니다.

기자) 자금도 대셨죠, 그렇죠?

배병준 대표) 예, 자금이라는 건 현금으론 줄 수 없고, 미국에 생션(제재)이 있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 쪽의 문화성이니 영화촬영소, 이분들이 툴링(장비), 그러니까 카메라, 라이팅(조명), 레코딩(녹음), 메이크업(분장), 이런 게 상당히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걸 주로 제가 서포트(지원) 해줬어요.

기자) 그러니까 제재 국면이기 때문에, 북한에 돈이 들어가는 걸 미국에서 예민하게 볼 수 있기 떄문에 현금이 아니라 기자재를 제공하신 거군요.

배병준 대표) 맞습니다.

기자) 말씀하신대로 감독, 배우,또 영화 보조인력들 모두 북한인들인데 말이죠. 섭외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배병준 대표) 제가 그 쪽에 15년 동안 구호사업을 했습니다. 주로 함경북도 청진, 회령, 길주, 이 쪽에 고아원이니, 농사 이런 것들을 15년 동안 하다보니 그 사람들과 알게 돼 가지고 내가 문화성하고 촬영소에 가서 내 스크린플레이(영화대본)를 보여주고 같이 합작을 찍자, 이렇게 됐습니다. 그 후에 디렉터(감독)를 다섯 번인가 바꿨어요, 찍으면서.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아가지고, 그래서 디렉터를 리크루트(채용) 한 다음에 디렉터하고 나하고 시네마포토그래퍼(영화촬영기사), 라이팅(조명기사), 액터(배우)를 전부 우리가 테스트해서 섭외했습니다.

기자) 그렇군요. 미국 시민이, 아무리 북한 주민 구호활동으로 신뢰를 쌓으셨다고 했습니다만, 그래도 북한 당국의 반응이 어땠을지, 처음 영화를 찍는다고 했을 때.

배병준 대표) 제가 15년 동안 그분들하고 구호사업을 했기 때문에 순전히 개인이 그 사람들한테 제일 고난할 때, 97년, 98년 2000년까지 그 때가 상당히 고난하지 않았습니까, 그 쪽에? 그 때 고아원에 인도적 지원을 한 걸 그 사람들이 보고, 또 내 고향이 회령입니다. 함경북도. 회령이 김일성 부인, 김정일 어머니가 태어난 도시에요. 회령이라는데가. 그래서 그런 점에도 친밀감이 있고 해서 그들로부터 신뢰를 받은 거죠.

기자) 신뢰를 얻게 돼서 설득을 시키셨다는 말씀이신데요, 미국인이기 때문에 겪는, 영화 제작 과정에서 겪었던 제약은 없었나요?

배병준 대표) 그 사람들이 나를 볼 때는 미국 사람이라고 보지 않고 재미동포라고 본다구요. 이렇게 보기 때문에 제약은 없었습니다.

기자) ‘산너무 마을’, 사랑과 평화를 다룬 영화라고 들었습니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실제로 결혼까지 하게 됐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배병준 대표) 예, 우리가 촬영하는 동안에 다른 사람들은 몰랐는데 나는 눈치챘어요. 둘이서 눈이 맞아가지고. 그래서 둘이 어디가서 얘기도 하고 그랬는데, 연애 시작할 때쯤. 그런데 그 후에 연애를 해서 결혼도 하고 딸을 낳았습니다. 둘이 연애를 하는 동안이니까 촬영할 때 상당히 편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다못해 두 배우가 서로 얼굴 쳐다보는 자체가 실제로 사랑하기 때문에 도움이 됐습니다. 예술적인 측면에서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기자) 두 남녀 주인공에겐 아주 특별한 영화가 됐겠네요.

배병준 대표) 예 그렇습니다.

기자) 미국에 오신 지는 오래되셨습니까?

배병준 대표) 1959년도에 왔으니까 53년쯤입니다.

기자) 50년이 훌쩍 넘으셨는데요, 미국에선 어떤 일을 해오셨죠?

배병준 대표) 미국에 제가 유학생으로 왔어요, 그때. 미국와서 이제 대학을 졸업해 가지고 미케니컬 엔지니어링 디그리(기계공학 학위)를 받았어요, 미주리 대학에서. 그래서 ‘스탠더드 오일 오브 뉴저지 ‘, ‘액슨노블’이죠, 지금, 그 회사에 채용돼 엔지니어로 18년 동안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83년도에 제 회사를 차려가지고 한 30년 동안 회사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액티브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기자) 그렇군요. 앞서 15년 동안 북한 주민 구호활동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북한에 상당히 자주 드나드셨겠군요, 그러면.

배병준 대표) 지금까지 한 50번 정도 드나들었습니다.

기자) 산너머 마을, 7일 제 5회 시카고 세계 평화영화제에 출품됐는데요. 작년에 하와이에서 미국에 처음 소개된 걸로 압니다. 반응은 어땠습니까?

배병준 대표) 참 좋았습니다. 하와이에요, 사람들이 자리가 없어서 돌아가고 그랬어요. 그래서 페스티벌, 아주 성공을 했습니다.

기자) 이번 영화제에서도 많은 성과를 거두시길 바랍니다.

배병준 대표) 감사합니다.

북한에서 촬영된 영화 ‘산너머 마을’의 제작자 배병준 씨였습니다. 인터뷰에 백성원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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