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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 생활고, 나아진 것 없어"


지난 8월 북한 평안남도 성천군에서 홍수 피해를 입은 옥수수 밭.
지난 8월 북한 평안남도 성천군에서 홍수 피해를 입은 옥수수 밭.
북한이 최근 관영매체를 통해 이른바 `생눈길 정신’을 강조하고 있는 데 대해 서울의 전문가들은 경제 여건 개선이 여의치 않자 또다시 주민들에게 정신무장을 강요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어떤지, 이연철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 4월15일 김일성 주석 1백회 생일을 맞아 북한 주민들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습니다.

[녹취: 김정은 제1위원장 조선중앙TV]“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인민, 만난 시련을 이겨내며 당을 충직하게 받들어 온 우리 인민이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입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 8월 초 평양을 방문한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경제를 발전시키고 생활수준을 증진해 주민이 행복하고 문명적인 생활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당의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창전거리 살림집, 릉라인민유원지, 해맞이 식당, 통일거리 운동센터 등 주민편의시설들을 잇따라 방문하는 등 민생 챙기기에 주력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북한 매체들은 김 제1위원장의 행보를 자세히 전하면서
김 제1위원장이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부각시켰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능라도를 인민의 섬으로 만들자고 하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그 말씀 끝없이 메아리치는 능라유희장에서 이렇듯 행복한 순간을 맞이한 우리 인민입니다.”

그러나 그 같은 행복을 맛보는 북한 주민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서울의 탈북자 김승철 씨는 말했습니다.

[녹취: 김승철 탈북자] “지금 수퍼에 가서 달러를 가지고 자유롭게 골라서 살 수 있는 사람하고, 농촌에서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하고 그 사람하고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겠죠.”

서울의 북한경제 전문가인 조봉현 IBK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에도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조봉현 IBK 경제연구소] “ 평양과 일부 도시는 겉으로 보기에는 훨씬 더 좋아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북한 전체지역으로 봤을 때는 오히려 더 나빠진 것이고, 일부 지역을 집중적으로 개발하다 보니까 오히려 지방 같은 데는 더 낙후가 되는 평양과 지방 간의 양극화는 더 커지는 것 같고…”

조 연구위원은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더 어려워진 단적인 예로 환율과 쌀값 등 물가가 계속 치솟고 있는 점을 들었습니다.

실제로 지난 4월과 9월에 각각 북한을 방문한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북한 전문가 루디거 프랭크 교수는 최근 VOA 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인플레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프랭크 빈 대학교소] “The price North Koreans pay in ordinary shops…”

북한 주민들이 이용하는 상점에선 사과가 1kg당 북한돈 6천원, 계란 1개가 8백원에 팔리는 걸 봤으며, 이는 일반 주민들의 봉급으론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북한은 여전히 가장 기본적인 식량 부족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 FAO와 세계식량계획 WFP가 이달 초 발표한 ‘2012 세계 식량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주민 3 명 중 1 명이 영양실조 상태입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평균을 낸 결과, 인구의 32%인 8백만 명이 영양실조로 집계됐다는 것입니다.

서울의 북한농업 전문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소의 권태진 부원장은 올해 가뭄과 수해로 곡물 생산이 줄어들어 내년도 북한 식량 사정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녹취:권태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부족량이 심지어 1백50만t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내년도에는 단순히 수입 가지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통상적인 국제사회의 지원 가지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아마 국제사회의 특별한 지원이 없으면 내년에는 북한이 상당히 심각할 것입니다. 2000년 이후 가장 심각한 해가 될 것입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 신문은 최근 중국 단둥에 체류하는 북한 주민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인민의 생계를 강조하고 있지만 북한 내부 사정은 오히려 악화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식량 가격이 크게 상승했고, 연료와 에너지, 원자재 부족이 계속돼 가동이 중단된 공장이 늘고 실업자가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빅토리아 눌런드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의 사정이 더욱 열악해졌다는 언론보도에 대해 우려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빅토리아 눌런드 대변인] “It is obviously of concern that people are coming out…”

한국의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국가적 목표로 내세웠던 강성대국 구호가 최근 북한 선전매체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도 이 같은 경제난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울러, 북한이 최근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생눈길 정신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김정은 정권이 민생 개선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자 주민들에게 다시 정신무장을 강요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자체적으로 경제를 되살릴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북한으로서는 외부 세계의 투자를 유치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로 경제난이 가중된 이후 중국 자본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올해 8월에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파견해 중국과 황금평 위화도 특구와 라선특구 공동 개발을 가속화하기로 약속했고, 최근에는 중국에서 투자설명회와 경제박람회를 잇따라 개최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북한이 바라는 성과는 나오지 않은 상태라고, IBK 경제연구소의 조봉현 연구위원은 말했습니다.

[녹취:조봉현 IBK 경제연구소]“ 과거에 비해 성과가 있다, 이렇게 평가할 수는 있지만, 이런 것이 실제적으로 북한의 어려운 경제를 푸는데 도움을 준다든지 영향을 준다든지 이런 정도의 성과는 아니라는 거죠.”

조 연구위원은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경제정책의 변화와 새로운 시장경제 도입 등이 중요하다며, 하지만 북한 당국이 그런 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과거 세계은행에서 북한을 담당했던 브래들리 뱁슨 씨는 경제적인 문제도 중요하지만, 핵 문제를 해결해서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 “ All the political and other risks…”

뱁슨 씨는 외부 투자를 유치하려면 무엇보다 정치적 안정이 필요하다며, 지금처럼 대북 경제제재가 이뤄지는 상황에서는 외부의 투자를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이연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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