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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테러 29주년...버마 남북한 관게 변화


지난 5월 버마 아웅산 테러 현장인 아웅산 국립묘지를 방문한 이명박 한국 대통령. (자료 사진)
지난 5월 버마 아웅산 테러 현장인 아웅산 국립묘지를 방문한 이명박 한국 대통령. (자료 사진)
북한이 저지른 버마 아웅산 폭탄 테러 현장에 희생자 추모비가 세워질 전망입니다. 29년 전에 발생한 아웅산 테러는 당시 남북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정작 북한 내부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인데요. 아웅산 테러 사건 이후 버마와 남북한 관계를 최원기 기자와 알아봅니다.

진행자) 버마 아웅산 폭탄 테러 현장에 추모비가 세워지는 것은 확정된 것인가요?

기자)아직 1백%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버마 정부가 이 문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9일 서울에서 한국-버마 외무장관 회담이 열렸는데요. 이 자리에서 한국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버마의 운나 마웅 린 외교장관에게 아웅산 국립묘지에 ‘희생자 추모비’를 건립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에 대해 버마 정부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합니다. 한국 외교통상부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시죠.

녹취: 한국 외교통상부 관계자] “금년 6월부터 미얀마 측과 협의를 계속해 왔습니다. 테인 세인 대통령의 국빈방문 시에 우리 외교부 장관이 미얀마 외교장관에게 추모비 설립을 위한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우리 정부는 미얀마 측과 구체사항을 협의해 나갈 예정입니다.”

진행자) 그런데 아웅산 테러 사건이 정확히 몇 년도에 일어났습니까?

기자)네, 버마 아웅산 테러는 지난 1983년10월9일 발생했습니다. 당시 서남아시아 순방길에 나선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은 첫 기착지인 버마에 도착해 버마의 국립묘지인 아웅산 묘소를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미리 잠입해 있던 북한 공작원이 전 대통령을 겨냥해 폭탄 테러를 가했습니다. 그 결과 서석준 경제 부총리와 이범석 외무장관 등 대통령 수행원 17명이 사망하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진행자)전두환 대통령은 어떻게 됐습니까?

기자)전두환 대통령은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습니다.당시 청와대 공보비서관으로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했던 최재욱 전 환경부 장관은 최근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공작원이 착각을 하는 바람에 전 대통령이 살았다고 증언했는데요. 최재욱 당시 비서관의 말을 들어보시죠.

[녹취:JTBC/최재욱/전 환경부 장관] “ 선발대가 (오전 10시)26분에 온 거다. 정열하라고 해서 넥타이를 딱 (정돈)하니까 꽝 터진 거다.(미리 도착한 이계철 버마 대사의) 차 양쪽에 태극가 달렸고, (이 대사) 머리는 (전두환 대통령처럼) 머리 숱이 적고 이러니 (북한 공작원들이 (이 대사의) 선발대 차를 본대 (대통령의) 차로 알고…(폭파한 거다)”

진행자)다른 나라의 대통령을 제3국에서 암살하는 것은 엄청난 사건인데, 그 후 어떻게 됐습니까?

답)전두환 대통령은 급거 한국으로 귀국했구요. 수사에 나선 버마 경찰은 3명의 북한 정찰국 소속 공작원을 발견했습니다. 이 중 1명은 도주하던 중 사살됐고, 진모 소좌와 강민철로 밝혀진 두 사람은 체포됐습니다. 이후 재판을 통해 진모 소좌는 사형에 처해졌고, 범죄 사실을 자백한 강민철은 사형을 선고 받은 뒤 종신형으로 감형됐다가 2008년에 사망했습니다.

진행자)버마 정부가 북한에 강력히 항의했을 것 같은데요.

기자) 당시 버마 정부는 북한에 강력 항의한 것은 물론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했습니다. 또 한국과 미국은 물론 일본과 유럽 등 전세계 69개국이 북한의 테러 행위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진행자)북한이 테러 사실을 인정했나요?

기자)아닙니다. 북한 정권은 자신들과 아웅산 테러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부인했습니다. 다만, 나중에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 노동당 비서는 이 문제와 관련해 과거 김일성 주석이 “밑에 있는 과격분자가 자의적으로 저지른 사건”이란 식으로 시인하려 했지만, 김정일 위원장이 “그러면 안된다, 딱 잡아떼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진행자)그 뒤 북한과 버마 관계는 어떻게 됐습니까?

기자)버마는 지난 2007년에 북한과 다시 외교관계를 재개했습니다. 이후 두 나라는 지난 몇 년간 무기 거래와 군사 교류를 하는 등 비교적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그러나 버마는 최근 민주화 조치를 취하면서 북한과 다시 거리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진행자) 최근 버마-북한 관계를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기자)네, 버마의 민주화는 지난 2010년부터 시작됐는데요. 버마는 20년만에 총선거를 실시해 테인 세인 대통령이 초대 민선 대통령으로 선출됐습니다. 이후 세인 대통령은 미국과 한국의 권유를 받아들여 북한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세인 대통령은 지난 5월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버마를 방문했을 때 “북한과의 무기 거래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세인 대통령은 지난 9일 서울에서 열린 한국-버마 정상회담에서도 한국과의 외교, 경제 관계를 한층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으로 미뤄볼 때 버마는 앞으로 한국과 손잡고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추진할 공산이 크다고 관측통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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