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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롤드 그린 미 PCIP 회장 “북한 수해 복구 환경 극히 열악”


최근 태풍 15호 볼라벤 피해 복구 작업에 동원된 북한 주민들. (Pacific Council on International Policy 제공)

최근 태풍 15호 볼라벤 피해 복구 작업에 동원된 북한 주민들. (Pacific Council on International Policy 제공)

미국의 민간 연구기관인 ‘국제정책태평양위원회 (PCIP)’ 임원진과 대표단이 지난 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단체의 제롤드 그린 회장을 비롯해 전직 미 대사와 기업체 대표 등 23명으로 구성된 방문단은 지난 달 27일부터 이달 1일까지 평양과 원산, 남포, 개성 등을 둘러보고 현지 주재 외교관과 유엔 소속 인사들을 만났는데요. 특히 방북 당시 북한의 태풍 피해와 복구 현장을 여러 차례 목격한 제롤드 그린 회장으로부터 현지 상황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이번 방북의 성격부터 설명을 좀 해 주시죠.

그린 회장) 저흰 미 서부에 기반을 둔 국제 정책연구기구입니다. 관련 인사들 모두 국제관계에 큰 관심을 갖고 세계 각국을 방문하고 있구요. 이번엔 그 중에서도 북한에 특히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함께 그 곳을 방문한 겁니다. 현지 상황을 직접 봤으면 했던 거죠.

기자) 방문 인사 중엔 전직 미국 관리도 있구요, 민간 부문 고위 인사들이 대부분이어서 혹시 미-북 간 민간교류 차원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제롤드 그린 미 국제정책태평양위원회(Pacific Council on International Policy) 회장.

제롤드 그린 미 국제정책태평양위원회(Pacific Council on International Policy) 회장.

그린 회장) 아닙니다. 그런 목적을 갖고 북한에 들어간 사람은 일행 중 한 사람도 없습니다. 민간급 고위 인사 교류인 ‘트랙 투’ 차원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기자) 마침 방북 시기가 북한에 태풍이 상륙했던 시점과 겹쳐서요. 현지에서 혹시 태풍 피해 상황을 직접 보셨는지요?

그린 회장) 북한에 태풍이 덮쳤을 때 그 곳에 있었던 게 맞습니다. 많은 나무들이 넘어져 있는 걸 봤습니다. 복구작업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더라구요. 작업하는 사람들이 손도끼나 낡은 톱을 들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기톱만 있어도 일이 훨씬 수월할텐데 말이죠. 트랙터도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또 길가에 앉아 검은 돌과 흰 돌을 일일이 손으로 분리하는 작업을 하는 여성들을 봤습니다. 잡초를 하나 하나 뽑고 있는 거 같았습니다. 사람들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이리 저리 다녔는데요. 역시 태풍으로 인한 피해복구 작업에 동원된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기자) 태풍의 여파를 직접 체험하신 거네요.

그린 회장) 예. 북한에 태풍이 덮쳤을 때 저희는 평양에서 원산으로 향하는 중이었습니다. 원산에 있는 호텔에 투숙했는데,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또 태풍의 여파로 호텔 여기저기서 물이 많이 새고 있었습니다. 이후에 청소 작업이 진행됐구요. 이런 저런 복구 작업에 사람만 많이 투입될 뿐 실제로 일은 매우 비효율적으로 이뤄졌습니다.

기자) 태풍 피해 복구 현장도 여러 곳에서 목격하셨군요.

그린 회장) 평양에선 복구 작업 현장을 그리 많이 보진 못했지만, 원산과 남포, 개성을 향하면서 많이 목격했습니다. 전기가 부족하고 기계화가 덜 된 북한에서 어쩌면 그렇게 많은 사람을 동원하는 게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저희 안내원도 1년에 2차례씩 농사일에 동원된다고 얘길 했습니다.

기자) 농작물 피해 실태는 혹시 볼 수 있었습니까?

그린 회장) 경작지가 물에 잠겨 있었는데요. 저희 일행 중 농업전문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 말이 작물 상태가 무척 안 좋아 보인다고 하더군요. 그나마 버스를 타고 가면서 관찰한 것이고, 그 이상은 보기 힘들었습니다.

북한에서 태풍 15호 볼라벤으로 떨어진 간판. (Pacific Council on International Policy 제공)

북한에서 태풍 15호 볼라벤으로 떨어진 간판. (Pacific Council on International Policy 제공)

기자) 태풍 때문에 이동하는 게 어렵진 않으셨나요?

그린 회장) 원산에 들어가서는 쓰러진 나무들 때문에 길을 돌아가야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차가 계획을 바꿔 다른 길로 들어서자 갑자기 안내원들이 사진을 못찍게 하더군요. 갑자기 나타난 빈민가를 외부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기자) 평양 상황은 어땠습니까?

그린 회장) 평양에서도 정전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저흰 양각도 호텔에 묶었는데요. 호텔 상황은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밤에 차를 타고 평양 시내를 나가보니 광범위한 지역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손전등을 켜고 지나다니는 모습을 봤습니다. 가로등도 들어오지 않았구요. 호텔에서 평양 시내를 내려다 봐도 불빛을 별로 볼 수 없었습니다.

기자) 지방은 전력 상황이 더 열악했겠군요.

그린 회장) 원산에 갔을 때 일입니다. 어느 날 밤 호텔 인근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거기서 호텔까진 두 블록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저흰 걸어서 돌아가고 싶었죠. 그런데 안내원들이 말렸습니다. 너무 캄캄해서 다치지 않을까 걱정하더군요. 하지만 저희도 손전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호텔까지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암흑에 덮힌 북한 모습을 담은 위성사진이 생각났습니다.

기자) 평양 외에 그렇게 지방 몇 곳도 둘러보셨는데요. 역시 수도 평양과 다른 지역과의 격차를 많이 느끼셨나요?

그린 회장) 평양은 상황이 괜찮아 보였지만, 평양을 조금만 벗어나도 심지어 다른 세기로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농사 방식도 너무나 기본적이었구요. 특히 경작지마다 망을 보는 초소가 세워져 있던 게 흥미로웠습니다. 농작물을 훔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반증으로 보였습니다. 식량이 모자라 영양 부족에 시달리는 주민들이 농작물에 손을 대는 걸 막기 위해 감시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 같았다는 거죠.

기자) 북한에서 영국 대사와 유엔 직원들, 스웨덴과 유럽연합 외교관들을 두루 만나신 걸로 압니다. 그들은 권력 승계 이후의 북한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혹시 말씀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까?

그린 회장) 모두들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해 궁금해 했습니다만, 변화가 시작됐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북한주재 외교관들과 유엔 현지 직원들, 또 신원을 밝히길 꺼린 인도주의 기구 요원들을 여럿 만났지만, 누구도 북한의 새 지도부가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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