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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동맹 외교보다 대미관계 개선해야"

  • 최원기

28일 이란에서 열린 비동맹운동 정상회의에 참석한 북한의 박의춘 외상.

28일 이란에서 열린 비동맹운동 정상회의에 참석한 북한의 박의춘 외상.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비동맹회의 참석을 계기로 평양의 비동맹 외교가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40년에 걸친 북한의 비동맹 외교가 한계에 부딪힌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의 명목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위원장이 30일 이란에서 열리는 제16차 비동맹운동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정상회의에는 한국의 외무장관 출신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참석할 예정이어서 김 위원장과 반 사무총장의 회동 여부가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북한이 ‘쁠럭 불가담 운동’으로 부르는 비동맹 정상회의에 참가한 것은 지난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반둥회의 10주년’ 행사에 참석했는데, 이 것이 북한 비동맹 외교의 시발점라고 워싱턴 존스 홉킨스대학 방문연구원으로 있는 한국 동국대학교 김용현 교수는 말했습니다.

[녹취: 김용현 교수] “반둥회의에 김일성 주석이 참석하면서 북한이 비동맹회의와 제3세계 국가와 관계를 개선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후 북한은 1975년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열린 비동맹국가 외무장관 회의에서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한 이래 매년 이 회의에 참가해왔습니다.

탈북자 출신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안찬일 소장은 비동맹 외교를 통해 한반도 문제에 주도권을 쥐는 한편 제3세계와 관계를 확대하는 것이 평양의 의도였다고 말했습니다.

[안찬일 소장] “북한은 쁠럭 불가담 나라 즉, 비동맹 나라들 진영에 속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을 제국국가로 몰고 또 국제무대에서 제3세계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려 했습니다.”

북한의 이런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습니다. 예를 들어, 1975년 리마에서 열린 비동맹회의는 북한의 주장에 따라 주한미군 철수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북한은 1995년 콜롬비아에서 열린 11차 비동맹 정상회의에서는 부의장국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비동맹회의는 1990년대 들어 냉전이 종식되면서 그 중요성이 약화되고, 한반도 문제에도 중립적인 입장으로 선회했습니다. 다시 김용현 교수입니다.

[녹취: 김용현 교수] “국제사회의 양대 축인 미-소 냉전구조가 해체되면서 비동맹회의도 상당히 약화된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지난 2009년 4월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비동맹회의는 한반도 조항 자체를 삭제함으로써 남북한 문제에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전문가들은 40년에 걸친 북한의 비동맹 외교가 한계에 부딪혔다며, 이제라도 핵 문제를 해결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안찬일 소장의 말입니다.

[녹취: 안찬일 소장] “핵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김정일 체제가 국제사회에서 당당한 일원이 될 수 없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과연 북한이 핵 문제와 비동맹운동, 서방과의 관계 개선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1956년에 시작된 비동맹회의는 현재 120개 회원국과 17개 옵서버 국가로 구성돼 있습니다.

한국은 1997년부터 초청국가 자격으로 비동맹회의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소리 최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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