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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통일연 최수영 박사, 연평도 포격사건 백서 출간


지난 2010년 11월 30일 북한의 포격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연평도.

지난 2010년 11월 30일 북한의 포격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연평도.

북한에 연평도 포격 도발이 발생한지 1년 반만에 연평도 사건을 다룬 백서가 한국에서 출간 되었습니다. 인천시 옹진군이 발간한 백서에는 포격 사건 당시 피해 현황과 또 한국 정부의 대응 조치등이 담겨 있는데요 백서 편찬을 맡은 한국에 국책 연구소 통일 연구소 최수영 박사를 전화로 연결하겠습니다.

문)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난지 1년 반이 조금 더 넘었는데요, 지금 시점에서 백서를 발간하게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답) 네, 그렇습니다. 연평도 포격 사건 백서는 피해 복구에 대한 정부 지원 및 상황을 중심으로 일련의 사건 수습 과정을 메뉴얼 방식으로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연평도 포격 사건 백서는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한 반성을 통해 향후 유사 사건 발생시 원활한 대응에 활용할 수 있는 지침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포격 사건의 발발과 처리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후세들에게 교훈을 주고자 발간하게 된 것입니다.

문) 네,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 백서이군요. 그렇다면 백서 발간, 어떻게 추진되었습니까? 옹진군과 통일부가 함께 작업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답) 네, 그렇습니다. 우리 정부는 천안함 피격 사건에 관한 백서를 제작 발간한 바 있습니다. 연평도 포격 사건은 북한의 포격으로 민간인 피해자 및 민간 지역에 물리적 피해가 발생 하였다는 점에서 피해 당사자인 옹진군이 직접 백서를 발간 하기로 하고 예산을 지원하였습니다. 백서의 집필은 북한 및 남북 관계를 연구하고 대북 및 통일 정책을 건의하는 국책 연구 기관인 통일 연구원이 맡아서 진행하였습니다. 백서 관련 작업은 옹진군의 자료 협조 또한 관련 기관의 자문등을 거쳐 통일 연구원 연구진과 전문가들이 집필하였습니다. 연평도 포격이 1년 되는 시점에 착수하여 올해 6월말 제작이 완료되었습니다.

최수영 박사.

최수영 박사.

문) 백서를 만들었으면 이제 널리 배포를 해야되겠는데요 어디에 배포를 하실 계획입니까?

답) 우선은 옹진군 내에 기관이라든가 센터, 이런곳에 가게 될 것이고요, 또한 국회, 정부, 관련기관, 국회 도서관 등등 모든 곳에 아마 뿌려지게 될 것입니다.

문) 네, 그렇군요. 많은 참고가 될텐데요. 그러면 백서 내용을 좀 살펴보죠. 우선 연평도 포격사건, 시간이 좀 지났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생히 기억을 하고 있을텐데요. 전세계에 언론이 당시게 크게 주목을 했었죠. 어떤 사건이었는지 간단하게 다시 정리를 해볼까요.

답) 네, 2010년 11월 30일 오전, 우리 국군과 주한 미군 육해 연합의 호국 훈련이 진행된 바 있습니다. 진행에 앞서서 북한은 호국 훈련이 북한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냐며 중단을 요청하는 전통문을 보냈지만 (3:6) 훈련은 예정대로 실시되었습니다. 이날 오후 2시 33분경에 북한은 개머리 한포 기지로부터 연평도 군부대 및 인근 민간을 향해 포격을 시작 하였습니다. 북한 공격은 두차례로 나위어 3시 41분까지 계속 되었고 포탄 170여발이 발사되었습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은 수도권에 근접한 연평도 민간일을 노린 공격하는 일인 점에서 북한의 호전성과 무모함이 과거와는 크게 양상이 다른 군사 도발이었습니다. 북한이 우리 영토에 대해 포 사격을 가한것은 한국 전쟁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과거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해상 등에서 우리 군을 공격했지만 이번에는 해상이 아닌 영토에 직접 포사격을 했다는 점에서 과거의 도발과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북한군이 민간인 거주 지역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포격을 가하여 민간인을 살상하였다는 점에서 중대한 도발이라고 할 것입니다. 여기에 연평도 포격건의 심각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문) 네, 포탄이 150발 이상 날라왔으니까 피해 상황도 상당했을 텐데요 당시 피해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답) 네, 그렇습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사망자 네명이 발생했습니다. 여기에는 해병대원 두명과 민간인 두명이 사망하였고요, 부상자도 60여명이 발생하였습니다. 또한 물적 피해도 굉장히 막심했습니다. 건축물 326동이 파손되었는데 이중 전파된 건물은 52동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산불화재가 발생해서 산림 47 헥타르가 전소 되었고요 기관 시설인 도로 상하수도 전기 및 통신시설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또한 주택 상가 등 건축물 내 생활 용품 등 영업 기자재를 비롯하여 사유재산 손실도 발생하였습니다. 물론 해병 연평 부대도 적지 않은 피해를 당해서 부대 내 시설이 화재로 파괴되는 피해를 보는 일도 발생하였습니다.

문) 그렇군요. 이런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한국 정부도 당황 했을 텐데요 당시 정부 대응은 어땠습니까?

답) 정부의 대응은 먼저 북한의 개머리 진지 지역에 포사격을 가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이후 정부는 대응을 중단하고 성명을 발표 했는데 북한의 연평도 도발 행위는 대한민국에 대한 명백한 무력 도발로 규정하고 북한의 추가 도발 사례시에는 단호히 추가 도발 할것을 천명했습니다. 또한 연평도 포격 이후 1년동안 우리군은 서북도서 지역 전력보강을 위해 힘썼습니다. 서북 도서 방위 사령부를 창설하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서 서북도서 지역의 병력과 화력을 대폭 보강했습니다. 북의 공격에 대해서는 기존의 방어 개념에서 벗어나 유사시 북한 해안 기지와 내륙 지역을 선제 타격 할 수 있는 작전 개념도 발전 시켰습니다.

문) 그렇군요. 또 연평도 주민들의 피해도 많았을텐데요, 피해 복구 사업은 어떻게 진행이 되었습니까?

답) 연평도 포격 직후 정부는 연평도 주민들의 피해 복구에 국군을 즉각 지원하였습니다. 2010년 12월 6일 연평도 포격 도발로 인해 피해를 입은 주민들의 피해 복구와 생활 안정을 위해 309억원을 집행하는 한편 연평도를 포함한 서해 5도 종합 발전 계확 을 마련 하였습니다. 종합 대책에는 연평도 피해 복구 및 주민 안정 대책 서해 5도 종합 발전 방안 정부의 위기 대응 태세 재정비 등이 담겨 있습니다. 연평도 포격 사건을 계기로 서해 5도민의 숙원 사업인 대표 현장 사업도 추진되었습니다.

문) 네, 연평도 주민들, 원래 살던 대로 돌아와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포격 이후 연평 주민들 대다수는 집을 떠나서 인천으로 피난 했습니다. 임시 거주지에서 3달을 머물렀는데 1차 임시 거주지는 찜질방과 모텔 이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약 3주 정도 머물렀고 2차 거주지인 김포 양국 아파트에서는 두달간 지냈습니다. 이후 긴급 복구가 이루어 지며 이들 피난 주민들은 연평도로 다시 돌아왔고 지금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문) 연평도를 찾았던 손님들은 현재 과거 수준으로 방문자 수가 다시 돌아왔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연평도 포격 직후에는 말할 수 없이 방문객과 관광객의 수가 줄었습니다만 포격 일주년 이전부터 관광객들이 늘어났고 이전보다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연평도 뿐 아닌 백령도 및 서해지역 관광객 증가 추세가 보이고 있습니다.

문) 포격사전 전 상황으로 정상적인 상황이 된것 같은데, 이러한 일이 다시 일어나면 안되지만, 만약에 일어난다면 어떤 식으로 대응이 이루어 지는 겁니까? 이러한 내용도 이번 백서에 담겨 있는거지요?

답) 구체적인 그런 내용은 담겨있지 않습니다. 앞서 발간 배경을 말씀드릴때 메뉴얼로 삼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물론 메뉴얼로 삼고자 한다고 하더라도 잘된점 잘못된 점이 있을 것입니다. 잘된점들은 참고를 할 것이고 잘못된점들은 발전을 시켜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유사 사건 발생시에는 아무래도 이 백서가 다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 네, 지침이 되겠군요.

답) 네.

문)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최박사님.

답) 네, 감사합니다.

네,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연평도 포격 사건에 관한 백서에 편찬을 맡은 통일 연구원 최수영 박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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